일본이 향후 수년 안에 급속한 고령화 현상으로 예금증가율이 둔화되고 시중은행의 일본 국채 매입 여력도 줄어들면서 그리스와 같은 재정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현재 발행액의 90% 이상이 국내에서 소화되는 일본 국채의 내부 수요가 줄어들 경우 국채금리가 치솟으며 재정에도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것으로 우려된다. 일본 전국은행협회(JBA)의 나가야스 가쓰노리(永易克典) 회장은 11일자(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고령인구 증가로 예금액이 줄어들기 시작하면 민간은행들이 지금처럼 적극적으로 국채매입을 이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나가야스 회장은 거액의 현금을 보유한 고령자들이 속속 은퇴로 내몰리고 연금도 줄어들면 일본 시중은행들의 국채매입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이 같은 문제를 피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재정개혁을 통해 금리인상을 억제하고 국가부채 문제에 신속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아직은 은행들에 국채를 사들일 여유가 있지만 일단 이 자금이 고갈되면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재 일본은 전체 국채 가운데 약 93%, 중장기채권의 경우 95%가량은 은행 등 일본 국내 투자가가 보유하고 있어 극심한 재정적자와 대지진 복구 등 온갖 악재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국채 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은행을 비롯해 국내 투자가의 국채매입 여력이 떨어지고 해외 투자가의 비중이 높아질 경우 일본 국채시장은 해외투자가들의 손에 따라 출렁이며 재정상태가 순식간에 악화될 수도 있다. 다만 아직은 일본 은행들이 마땅히 예금을 운용할 곳을 찾지 못해 국채 투자를 대거 늘리는 추세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현재 일본 민간은행의 국채보유 잔액은 158조7,791억엔으로 5년 전에 비해 58%, 10년 전에 비하면 약 2배가량 늘어나며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총자산에서 국채가 차지하는 비중도 전년 동기 대비 2%포인트 높은 19%에 달했다. 생명보험 업계도 자산운용에서 국채비중을 갈수록 높여가고 있다. 3월 말 현재 생보업계 자산에서 국채가 차지하는 비중은 41.3%를 기록, 5년 연속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하지만 이처럼 국채보유액이 증가하면 금리 상승에 따른 손실 리스크도 확대되는 만큼 은행 등이 손실을 피하기 위해 국채를 대거 내다팔면서 국채시장을 뒤흔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니혼게이자이는 2003년 은행들이 리스크 회피를 위해 국채를 한꺼번에 매도하는 바람에 장기금리가 1%포인트가량 급등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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