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유럽 순방 중 대학강연에서 "감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중국 고사(故事)를 인용, 서방의 중국 체제 비판에 불만을 토로했다. 흔히 말하는 '귤화위지(橘化爲枳)'지만 시진핑의 비유에는 본래 뜻과 달리 중국의 정치이념을 위한 변호를 담고 있다. 시진핑에 따르면 중국은 신해혁명(1911) 후 100여년 동안 입헌군주제·의회제·대통령제 등 여러 정치체제를 시험해왔다. 그런 오랜 시행착오 끝에 중국 풍토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회주의 체제를 선택한 만큼 중국의 정체를 두고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불쾌감의 표현이다.
△하지만 같은 고사성어라도 그 의미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속담에 나오는 귤만 해도 그렇다. 우리나라 풍토에서 감귤은 제주도에서만 재배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에는 기후변화와 비닐하우스 농법 등의 보급으로 남한 전역에 걸쳐 현금작물로 각광 받고 있다. 아직은 제주 감귤이 대세라지만 만감류 등은 통영·고흥·완도·남해 등 남해안 지역에서 육지 감귤로 재배된 지 오래다.
△깊은 내륙 지역인 충주시가 2009년 자유무역협정(FTA)에 대응하기 위해 시험재배에 성공한 탄금향(한라봉 개량종)까지 포함한다면 사실상 '회수'라는 강을 건넌지 오래다. 중국도 마찬가지 아닌가? 재배 한계선이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210만㏊의 감귤농장에서 2,600여만톤을 생산해 2009년 이미 캘리포니아 오렌지로 유명한 미국, 브라질을 제치고 감귤생산 세계 1위로 올라섰다. 이쯤되면 '귤화위귤'로 표현해야 맞다고 할 수 있다.
△계절조차 더 이상 속담을 따라가지 않는다. 감귤은 더 이상 겨울 과일이 아니다. 다른 종류는 제쳐 두고 밀감만 하더라도 요즘엔 사시사철 즐길 수 있는 세상이다. 10월이면 조생종이 나오기 시작해 노지물이 다음해 초까지 나온다. 3~4월로 접어들면 월동 밀감이, 5~10월까지는 하우스 밀감이 나와 마트의 청과코너를 장식한다. 감귤만인가. 우리나라는 중국과 인접해 있으며 오랜 세월 유교문화권으로 동질성을 지녀왔지만 2차대전 이후 개도국으로 출발한 그 어느 나라보다 서구 정치이념인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활짝 꽃피우고 있다. /온종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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