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은 명군을 천병이라고 불렀다. 천병은 조선을 구원하는 천자의 군대이며 하늘의 군대라는 뜻이었다. 명군도 그렇게 불렀다. (중략) 명의 수군은 동작나루까지 마중 나온 조선 임금으로부터 통곡을 앞세운 애끓는 환영을 받았다. 그때 동작나루에서 명 수군 총병관 진린은 조선의 하급 관리 한 명을 붙잡아 목에 노끈을 묶어서 끌고 다녔다. 피투성이가 된 조선 관리는 네 굽으로 기면서 개처럼 끌려 다녔다. 임금은 외면했다. (중략) 진린이 나루에서 뭍으로 오를 때 신발이 물에 젖었다는 것이었다.'(소설가 김훈의 '칼의 노래' 178~179쪽)
박근혜 대통령의 성공적인 방중 결과를 보며 느닷없이 정유재란 당시 우리 역사의 수치스러운 대목이 오버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박 대통령에게 "나의 라오펑유(老朋友ㆍ오랜 친구)"라며 최상의 친밀감을 과시하고 다른 나라 정상들이 부러워할 만큼 극진하게 배려했다.
한중 밀월 과시로 성과 크지만
회담 성과도 기대 이상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고 우리 기업들이 서부 대개발 등을 통해 중국 내수시장에 진출하며 한중 관계가 새로운 20년의 원년이 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일본 언론들이 "한중이 일본을 따돌리고 밀월 관계를 연출했다"며 경계할 만도 하다.
하지만 마냥 환호만 하기에는 뒷맛이 개운치 않다. 누구나 알다시피 중국 측의 이례적인 환대에는 미국의 우방인 한국을 끌어들여 '아시아 중시(Pivot to Asia)'라는 미국의 대중 봉쇄 전략에 금을 내겠다는 의도가 배경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흠집을 내자는 게 아니다. 이번 성과는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의 개인적인 인연 등에 크게 의지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시 주석의 환대가 순수한 선의보다는 중국 측의 전략적 필요에 의한 것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중국 측은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도 결코 북한을 버리지 않겠다는 뜻을 시사하는 등 자신들의 핵심 이익을 관철시켰다. 북핵 문제에 대해 '유관 핵무기 반대'로 완화하고 우리 정부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6자회담 재개의 필요성을 강조한 게 대표적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내실화하기로 했지만 양국이 역사와 미래 비전을 공유할 수 있느냐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과 중국이 동시에 흥한 때는 거의 없었고 상호갈등이냐 굴복이냐, 선택의 순간만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중심부로 등장한 바이링허우(80후ㆍ1980년 이후 출생자) 세대 역시 우리 역사를 중국 속국의 연장선쯤으로 보고 있다. 상당수 중국 네티즌들이 박 대통령을 '조선족 대통령'이라고 부른 게 단적인 사례다.
개인적으로는 최근 일본의 군국주의 광풍보다는 "중화민국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시 주석의 취임 일성에 모골이 더 송연해질 때가 있다. 아베 신조 정권의 극우 공세가 국운 쇠퇴의 단말마를 의미하는 데 불과하다면 중국이라는 초강대국의 국수주의적 민족주의는 언젠가 더 큰 위협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자화자찬 아닌 대중전략 다시 고민을
이미 중국의 동북공정, 서해 어업 분쟁, 북한 붕괴 때 중국군의 개입 가능성 등 양국 갈등을 촉발할 수 있는 시한폭탄은 여기저기 널려 있다. 더구나 한국의 대중 경제 의존도는 갈수록 커지는 반면 공산당 일당 독재, 중화사상이나 소수민족 동화정책 등 중국적 가치는 우리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라는 측면에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이질적이다. 이 같은 불균형은 우리에게 언젠가 선택의 순간을 강요할 수도 있다.
물론 한국으로서는 중국의 중화대국화를 인정하면서 과거 20년처럼 중국 성장이 주는 기회에 올라타야 한다. 하지만 중국이라는 거대한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 한국이 중국화하는 것을 저지하면서도 한중 갈등이 증폭되지 않도록 미국이라는 지렛대를 더 활용해야 할 시점도 조만간 닥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부도 이번 정상회담에 대해 자화자찬만 늘어놓을 게 아니라 근본적인 시험대에 오른 대중 외교 전략을 다시 한번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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