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딸은 경기도 소재 일반고에 다닌다. 학부모 역할에 충실하고자 필자도 최근 1년 새 진학 관련 특강에 3번이나 참석했다. 한 대학입시 설명회에는 서울 강남의 명문 학원에서 초빙된 진학지도 전문가가 강연자로 나섰는데 그는 물리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귀를 의심하게 하는 발언들 쏟아냈다. "여기 이 표에 물리 있죠. 이거 어떤 사람들이 선택할까요. 수능에서 이거 선택하는 사람은 말이지요, 미친 사람입니다."
대입 물리1과목 선택 10%도 안돼
그런데 필자는 이 강연 말고도 또 다른 강연에서 '물리를 택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이라는 말을 몇 번 더 들어야 했다.
한 해 수능 지원자는 60만명이 넘는다. 그 중 물리I을 택하는 학생은 열 명 중 한 명도 안 되는 5만여명, 물리Ⅱ를 택하는 학생은 100명 중 한 명도 안 되는 5,000여명에 불과하다. 물리를 택하는 학생들은 그나마 물리에 자신이 있는 아이들일 터이고 그들과 경쟁해 상대적으로 좋은 등급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니 입시 전문가로서는 현실을 솔직하게 말한 것이리라. 그렇지만 교육이 나라와 개인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는 큰 관점에서 본다면 물리 기피를 강요하는 상황 자체가 오히려 제정신이 아닌 것이다.
최근 우리 과학교육에는 과학(Science)·기술(Technology)·공학(Engineering)·수학(Mathematics)을 융합해 교육하자는 미국의 'STEM'교육방식이 도입되고 있다. STEM은 줄기라는 뜻을 갖고 있다. 즉 과학기술 분야 교육의 근간을 의미한다. 또한 마치 줄기세포가 어떤 종류의 세포로도 분화될 수 있는 것처럼 STEM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다양한 인재로 자라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해주자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 우리나라는 여기에 예술(Art)적 감성까지 포함한 'STEAM'융합교육을 지향하면서 스팀엔진처럼 발전의 원동력이 될 것을 염원하고 있다.
우리 일상 주변의 거의 모든 기술이 융합돼 있으며 이를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융합적인 과학기술교육이 필수적이다. 원자력 안전, 기후환경 문제, 건조물 붕괴, 선박 사고 등 수많은 위기관리와 극복을 위해서도 STEAM 융합교육은 필수적이다. 이렇게 우리 과학교육은 STEAM을 지향하지만 현실은 정반대 방향인 분열로 가고 있다.
융합교육 위한 제도개선 서둘러야
이제 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 등 과학기술과 수학 각 분야의 특성을 살펴 우리나라와 아이들의 미래를 준비하는 데 필요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 수학은 그 자체 고유의 목적도 있지만 과학기술 분야의 소통언어로 여겨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수학이 과학기술교육에 필수적이지만 개별적 능력을 무시한 과도한 집중 현상과 다른 과학 분야와의 별리(別離)에 대해서는 검토가 필요하다. 기본적인 물리 개념은 모든 과학기술의 토대를 이룬다. 화학은 생물현상 이해에 필수적이다. 따라서 여러 과학기술 분야 사이의 의존관계를 고려해 교과과정이나 입시제도가 설계돼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대로 STEAM 융합교육이 이뤄지려면 교사 양성 자체가 STEAM 지향적이어야 한다. 기본 물리를 선택하는 학생이 열 명 중 한 명도 안 되고 심화 물리는 100명 중 한 명도 선택하지 않는 나라가 어떻게 미래를 준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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