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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천수답 정치는 이제 그만


천수답은 필요한 물을 빗물에 의존한다. 비가 안 오면 농사를 짓지 못하고 그저 하늘에 대고 기우제를 지낼 뿐이다. 관개 농업이 시작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저수지를 만들어 인공적으로 농지에 물을 댔고 생육에 알맞은 환경을 만들었다. 인간이 주도적으로 생산량을 늘린 일종의 농업혁명인 셈이다. 관개 농업을 하려면 리더십이 중요하다. 누가 어떻게 주도하느냐에 따라 수확량이 달라진다. 합리적인 예측과 계획, 그리고 실행이 농사의 성패를 좌우한다. 농업만 그럴까. 경제도 관개 농업식 정책이 중요하다.

50여년 전 우리 경제에서 국가 리더십은 빛을 발했다. 1962년에서 1987년까지 25년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바탕으로 울산공업단지ㆍ경부고속도로 등 사회 인프라부터 수출용 경공업, 중화학 공업 등 특정 산업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인 경제개발이 이뤄졌다. 그 결과 이 기간 동안 1인당 국민소득은 40배 증가했다. 1953년 한국전쟁 피해를 복구하는 데 100년이나 걸릴 것이라던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의 예상을 깨고 단숨에 한국 경제는 기적을 일궜다.

그러나 이후 25년간 국가 리더십은 약화됐다. 국가는 체계적인 경제개발 계획 대신 세율인하, 규제 완화 등 경제환경 개선에 주력하고 투자와 경제발전은 민간이 주도하라는 식으로 바뀌었다. 마치 운동경기에서 감독이 작전은 안 짜고 응원만 하는 모습이었다. 그 결과 새로운 산업이 나오지 않는 '산업의 저출산 고령화'가 심해졌다. 10대 산업 대표 기업의 평균 나이는 54세나 되며 세계에서 선전하는 산업도 전자ㆍ자동차 등 일부 제조업에 불과하다. 최근 경제성장률도 8분기 연속 0%대에 그치는 등 우리 경제도 저성장 고착화의 위기를 맞고 있다.

물론 지금과 같은 글로벌 시대에 국가가 경제성장을 주도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가 방관자가 돼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지금은 좋은 악기와 악보를 주고 연주자들이 알아서 연주하라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필자가 주장하는 것은 훌륭한 연주자들이 감동적인 음악을 연주할 수 있도록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은 리더십을 발휘해달라는 것이다.



싱가포르 사례를 보자. 싱가포르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나라이지만 국가의 적극적인 리더십 덕분에 세계 최고 수준의 무역, 금융, 항공기정비, 관광 산업 등을 갖고 있다. 국가는 좁은 땅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구역별로 특화된 단지를 만들고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2010년 도덕국가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카지노를 개장했다. 덕분에 싱가포르는 2011년 한국보다 14배나 많은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고 인구보다 2배나 많은 해외 관광객 수를 기록했다. 또한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지수에서는 세계 2위를 차지했다.

지금 우리에게는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국가 리더십이 필요하다. 어떤 산업을 어떻게 육성하며 우리 경제의 비전은 무엇인지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하늘만 쳐다보는 천수답형 정치에서 벗어나 체계적인 계획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관개 농업형 정치가 한국 경제에 새로운 물길을 열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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