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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 특별 인터뷰] 8선 의원에 국회의장 2번… 이후락·김형욱 해임 요구… 70년대 정치규제 당하기도

●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1999년 7월20일 김대중 대통령이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광역자치단체 의원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인사말을 하던 도중 더우니 모두 저고리를 벗자며 먼저 웃옷을 벗고 있다.당시 국민회의 상임고문이던 이만섭(왼쪽 두번째) 전 국회의장이 박태준(오른쪽) 당시 자민련 총재와 함께 웃고 있다. /서울경제DB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8선 의원으로 국회의장을 두 번이나 지냈다. 1958년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생활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55년 동안 박정희 전 대통령부터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등과 함께 정계에서 동고동락해 여야를 아우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한국 정치권의 원로로 꼽힌다.

1963년 32세의 나이에 박 전 대통령에게 발탁돼 6대 국회에 민주공화당 전국구로 정치에 발을 들였다. 이 전 의장은 "기자로서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을 인터뷰하고 여러 번 만나면서 호감을 갖게 됐다"며 "마음이 쏠리면서 언론인으로 '안 되겠다' 싶어 1963년 추석날 밤 아내와 밤새 상의하고 정치에 입문하기로 결심한 후 다음날 곧장 박 의장을 찾아갔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이 전 의장은 박 전 대통령의 3선 개헌을 반대하고 나서면서 멀어졌고 당시 실세였던 이후락 비서실장과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해임을 요구해 1970년대에는 8년가량 정치규제를 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꼿꼿하고 소신 있는 정치행보를 굽히지 않으며 정치권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문민정부 초기인 1993년 국회의장에 처음 선출됐지만 여권의 날치기 법안 처리를 거부해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미움을 사기도 했다. 까랑까랑한 목소리에 강골이지만 후배 정치인이나 젊은 기자들에게도 격식을 따지지 않는 소탈함으로 유명하다. 그는 연세대 재학 시절 응원단장을 한 경험 등이 어려운 시절에도 씩씩함을 잊지 않게 했다고 말했다.



이 전 의장은 요즘도 매일 신문을 정독하면서 해외 주요 뉴스들까지 챙긴다. 따로 자료를 챙겨주는 비서가 없는데도 정부 부채나 가계부채 규모를 정확히 말할 수 있는 원천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이 전 의장은 후세에 어떤 인물로 기억되기를 원하느냐고 묻자 "돈을 좇지 않은 깨끗한 정치인, 대통령에게도 바른 말을 했던 당당한 정치인으로 추억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 소원도 "바른 말하다 당당하게 살면서 웃으며 죽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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