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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 CIA 고문 보고서 공개] 인권국가 미국의 '추악한 민낯'… 국제문제 비화 등 거센 후폭풍

183번 물고문·러시안룰렛 게임… 고문수법 예상보다 훨씬 잔혹

테러 무관 피해자도 최소 26명

고문후 방치 사망자까지 나와 美 인권 외교도 설득력 잃어

유엔 "관련자 기소하라" 촉구에 법무부 "계획 없다"… 논란 일듯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가 9일(현지시간) 미 중앙정보국(CIA)의 테러 용의자에 대한 충격적이고 야만적인 고문 실태 보고서를 전격 공개했다. 대외적으로 인권과 민주주의를 외치던 미국의 이중성이 적나라하게 폭로되면서 국제문제로 비화하는 등 후폭풍이 거세지고 있다. CIA의 고문 내용이 워낙 잔혹해 관련 테러단체의 보복공격이 우려되고 미국으로부터 인권개선 압력을 받아온 중국·러시아·북한·베네수엘라 등이 역공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또 CIA의 고문이 조지 W 부시 공화당 정부 때 발생한 치부라는 점에서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공화당 간의 갈등도 증폭되고 있다.

◇반인도적 고문에 사망자까지=다이앤 파인스타인(민주·캘리포니아) 상원 정보위원장은 이날 비밀로 분류된 총 6,800쪽 분량의 내용을 약 500쪽으로 요약한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는 지난 2001년 9·11사태 이후 아프가니스탄·폴란드·루마니아 등의 비밀시설에 수감된 알카에다 가담 혐의자 119명을 상대로 자행된 CIA의 고문실태를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그동안 CIA는 '선진 심문(enhanced interrogation) 프로그램'으로 미화해왔지만 미 언론마저 '경악'이라고 표현할 만큼 고문 수법이 예상보다 훨씬 잔혹했다. 또 최소 26명은 테러와 전혀 관련이 없는데도 고문에 시달렸다는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고문 대상자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한 다음 얼굴에 물을 붓는 '워터보딩' 물고문, 벽에 세워놓은 채 마구잡이 구타, 손을 머리 위로 묶은 다음 거꾸로 매달기, 좁은 상자에 강제로 집어넣기, 장기간 독방 구금 등은 기본이었다. 일부 대상자에게는 최소 183번 이상의 워터보딩 고문이 가해졌다. 또 대상자의 직장(直腸)에 물이나 음식물을 강제로 집어넣어 고통을 극대화하는 수법도 동원됐다.

단순한 육체적 고통의 차원을 넘어 수감자의 정신까지 파괴하는 고문도 자행됐다. 일부 수감자는 무려 180시간 동안 잠을 재우지 않았고 한 대상자에게는 17일 연속 고문이 행해졌다. 용의자를 공포로 몰아넣기 위해 눈을 가린 채 몸 가까운 곳에서 전동드릴 작동, '러시안룰렛(총알을 한 발만 넣고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쏘는 것)' 게임 등 조직폭력배 영화에나 나올 법한 고문방법도 동원됐다. 3명 이상의 수감자에게는 자녀에게 해를 입히거나 엄마의 목을 베거나 성폭행하겠다는 반인륜적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옷을 벗긴 뒤 쇠사슬로 묶어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방치하는 고문을 하다가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국제 이슈 비화에 곤혹스런 미 정부=그동안 미 정부는 알카에다 연루 혐의자를 "전쟁포로가 아니다"라며 국제법적 근거나 정식재판도 없이 해외 비밀감옥에 구금해 일부 국가의 비난을 받아왔다. 더구나 이번에 충격적인 고문의 실상이 드러나면서 국제적 이슈로 비화해 미 정부도 곤혹스러운 처지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당장 미 국외시설이나 기지에 대한 이슬람 테러단체나 극단주의자들의 보복공격이 우려된다. 이미 미 정부는 해외 대사관이나 군 기지 등에 대한 경계태세를 전방위로 강화했다.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진행 중인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단체인 '이슬람국가(IS)' 격퇴작전도 한계를 드러나는 마당에 테러 위협이 더 커진 것이다.

또 이번 보고서가 부시 행정부 시절의 오점을 공개적으로 공격했다는 점에서 오바마 행정부와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 간 갈등격화가 예상된다. 당장 CIA 전직 수장들은 물론 공화당과 부시 행정부 당시 각료들은 "고문은 테러범을 잡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 "CIA 요원들은 테러를 예방해 미국인을 구한 애국자"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이미 양측이 이민개혁행정명령, 새해 예산안, 키스톤XL 송유관 건설 법안 등을 둘러싸고 불협화음을 내는 가운데 충돌 가능성이 더 커진 것이다.

또 미국의 인권외교도 다소 설득력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공교롭게도 이번 보고서가 미국의 주 정부 대배심이 흑인을 사망에 이르게 한 백인 경찰에게 잇따라 불기소 결정을 내리면서 미국 내 인종차별이 관심사로 등장한 시점에 나왔기 때문이다. 당장 벤 에머슨 유엔 대테러·인권 특별보고관은 이날 성명에서 "국제인권법에 어긋나는 엄청난 조직적 범죄와 인권침해가 발생했다"며 "미국은 국제법에 따라 고문에 책임이 있는 CIA 및 정부 관리들을 기소하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미 정부가 관련 CIA 인사들을 단죄할 가능성이 희박해 국제적 논란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미 법무부는 CIA의 고문을 조사할 계획이 없다고 못 박았다. 또 이번 보고서 공개의 불똥은 유럽으로도 튀고 있다. 영국이 체포한 테러 용의자를 제3국으로 이송하는 데 CIA와 협조했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고 폴란드는 그동안 부인해온 자국 내 CIA 비밀감옥의 존재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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