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왜 파산하고 경영위험에 빠지는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 회계, 다시 말해 숫자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서울대 경영학과 최종학 교수는 말한다. 정치적 고려, 부실한 회계감사 등 온갖 외적 요인들이 회계 정보를 무시하게 함으로써 기업이 잘못될 길로 나아간다는게 그의 지론이다.
회계 전문 지식에 근거해 경영 관련 전략적 이슈를 낱낱이 분석했던 그가 '숫자로 경영하라' 시리즈 3번째 책을 냈다. 책의 큰 틀은 전작과 같으나 이번에는 2008년 이후의 최신 이슈들을 다뤘다. 그 첫 번째로 다룬 '한화의 대한생명 인수 및 대우조선해양 인수 실패와 그 뒷이야기'는 숫자경영에서 이탈할 경우에 기업이 어떻게 잘못될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결정판적 사례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한화그룹을 선정했으나 부(負)의 영업권 회계처리를 하면서 분식회계를 했다는 주장, 호주 맥쿼리 보험과 컨소시움을 맺는 과정에 이면계약이 있었다는 논란 등이 제기됐다. 한화가 대한생명을 헐값에 매입했다는 주장도 재부상돼 '부도덕한 기업'이라는 비판도 들끓었다. 우여곡절 끝에 한화는 대우조선해양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양해각서를 체결했으나 세계금융위기가 터졌다. 한화의 계열사 주식과 매각 예정이던 부동산 가격이 폭락했다. 한화는 산업은행에 대금의 분할지급과과 일부 자산의 구매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고, 계약불이행 처지에 놓여 납부한 이행보증금 3,150억원만 날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산업은행의 계약 파기 선언과 동시에 한화 계열사 주가는 동반상승했다. 계약금을 잃더라도 시장은 한화가 인수를 포기하는 게 낫다고 평가한 결과였다.
이를 두고 저자는 "산업은행이 민간기업이었다면 (한화의 요청을) 당연히 들어주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금융위기 후 조선업 업황이 나빠진 상황이었으니 매각이 훨씬 유리한 거래였던 것. 그러나 "처음의 매각조건을 바꾼다면 감사원은 한화에 대한 특혜를 지적하며 책임자 문책을 요구할 것이며, 과거 대한생명 인수시 회계부정을 이유로 한화를 반대했던 일부 정치권에서도 이를 정치이슈화 할 것"이라고 해석한 저자는 "처음부터 산업은행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이 사건은 "정치인들이 얼마나 기업을 괴롭힐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며 "대통령이 아무리 '창조경제'를 외쳐도 규정에 없는 새로운 시도를 하다가 하나라도 실수가 있으면 큰 불이익을 주는 현재의 공무원 규정과 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업무방식이 바뀔 리 없다"고 꼬집었다.
책은 크게 회계의 이면, 의사결정과 숫자 경영, 회계제도의 보완과 개선, 회계정보의 성과평가와 보상에서의 활용 등을 주제로 사례들을 가지치기 했다. M&A를 위한 자금조달 방법을 금호아시아나그룹과 유진그룹의 사례로 차이점을 분석했고, 현대건설 인수를 둘러싼 각종 논란을 정리했다. 특히 태산 LCD의 사례로 키코(KIKO)를 둘러싼 사건의 전말을 파헤친 것이나 저축은행 사태로 살펴본 부실 회계감사 문제의 해결책이 눈길을 끈다.
저자는 "기업은 아무런 이유없이 마음내키는 대로 행동하지 않는다"며 회계정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특정한 기업의 행동을 잘 관찰해보면 왜 그 기업이 그때 그런 의사결정을 내렸는지 이해할 수 있고 어떤 의사결정이 잘 하고 잘못한 선택인지를 배울 수 있다"고 밝혔다. 1만9,500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