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 이슈가 요즘 만큼 언론에 자주 오르내린 적이 없었던 듯싶다. 지난 2008년 계속운전에 돌입한 '국내 원전의 맏형'고리 1호기가 그 중심에 있다. 최근에는 고리 1호기의 원자로 압력용기와 관련된 기술적 논쟁도 뜨거워지고 있다. 몇몇 언론에서는 고리 1호기 계속운전을 추진할 당시 무언가 숨겨진 음모가 있지 않았느냐는 뉘앙스를 풍기기도 한다.
고리 1호기 안전성평가 불신 유감
지난해 고리 1호기의 안전성평가를 재검증하는 과정에 직접 참여했던 필자의 심기가 무척 불편할 수밖에 없다. 기술적인 안전성평가에 참여한 수백명의 원전 전문가들을 무언가 숨기려는 음모에 가담한 부류로 치부하는 것은 명예훼손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고리 원전 1호기와 관련, 일각에서 제기하는 의혹과 그 진위는 무엇인가. 우선 중성자 조사량(照射量)이 너무 높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일부 단체에서는 고리 1호기가 교육과학기술부의 '원자로 압력용기 감시시험기준'고시를 적용시켰던 내용을 들어 중성자량이 많이 조사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교과부 고시에서 제시된 중성자 조사량은 원자로 압력용기가 견딜 수 있는 안전기준이 아니고, 이보다 많은 양이 조사될 경우 원자로 압력용기에 대한 감시시험을 수행하라는 의미다.
뜨거운 유리컵을 갑자기 찬물에 넣으면 깨질 수 있듯이 합금강으로 된 압력용기도 이 같은 극한상황에 처하면 용접ㆍ균열 부위가 깨지거나 균열이 급진전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원자로의 재료인 합금강은 아무리 연성이 감소되더라도 유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파괴 저항성을 갖는다. 전문용어지만 내충격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무연성 천이온도(상당히 연성이 떨어져 충격에 약해지기 시작하는 온도)를 측정하는 방법 중 '마스터커브'라는 게 있다. 미국ㆍ프랑스 등 전세계에서 적용하고 있으며 필자도 지난해 10여명의 연구진과 공동으로 마스터커브 방법으로 고리 1호기의 안전성을 평가한 뒤 이를 발표, 객관성을 확보하고 공청회를 통해 보고했다. 당시 기술검토 사항에 대한 의구심이 전혀 없었음은 물론이다.
필자는 10년여 넘게 원자력 안전성평가 연구를 하며 매년 세계 최고 전문가들이 모이는 미국 기계기술자협회(ASME) 등을 통해 논문을 발표하고 신기술을 습득해왔다. 이 곳에는 수천여명의 연구인력들이 원전 안전성평가와 관련된 기술 향상을 위해 매진하고 있고 수많은 결과물을 도출해낸다. 그들은 원전 안전을 국가의 미래가 걸린 중대한 문제로 인식, 안전성 확보를 위해 거의 평생을 연구실에서 씨름하고 있다. 만일 그들의 기술평가에 대해 하나라도 의문점이 있다면 그 내용을 책임지고 있는 전문가들과 공개 토론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 자리라면 언제든 달려갈 준비가 돼 있다. 제발 연구진들의 피나는 결과물을 꼼수로 폄하하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전문가 공개토론 통해 의문점 풀길
사실 고리 원전 1호기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의 철저한 점검을 거쳐 안전성을 인정 받았고, 지역 주민들과의 합의를 통해 민주적 절차로 재가동했다. 또 지난해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의 안전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국내외 전문가들의 진단 결과를 토대로 안전설비 보강 대책을 수립, 착실히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국내 최초로 원자력에너지로 불을 밝힌 뒤 지난 34년간 오롯이 원전 역사와 함께 해온 고리 원전 1호기는 자랑스러운 에너지 자립의 역사이자, 역사에 묻어버리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현역'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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