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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전쟁' 실리콘밸리에 밀리는 월가

금융위기 이후 IB 비판 여론… 높은 업무 강도에 인기 하락

MBA졸업생 등 IT기업 선호

연봉 대폭 인상·근무환경 개선… 우수 인력 확보 안간힘


'월가의 호(好)시절은 갔다.'

최근 미국 월가 대형은행들이 신입사원 연봉을 대폭 올리며 돈잔치를 벌이는 가운데 아이러니하게도 금융계 인재유출에 대한 우려는 점차 고조되고 있다. 월가의 대규모 급여인상이 금융시장 호황이 아니라 실리콘밸리와의 인재 쟁탈전에서 밀리기 시작한 월가의 위상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CNN머니 등에 따르면 미국 대형은행들은 신입사원 연봉을 20~25%씩 줄줄이 인상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JP모건은 신입사원들의 연봉을 20% 인상하기로 결정했으며 모건스탠리는 25%의 인상률을 제시했다. 20%의 임금인상 계획을 발표한 골드만삭스의 경우 내년에 1년차 직원이 받는 연봉은 약 8만5,000달러(8,600만원)로 보너스를 포함하면 14만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월가 대형은행들이 두둑한 돈봉투를 흔들어대는 것은 한때 월가로 몰려들던 우수 인재들이 구글·애플·아마존 등 실리콘밸리의 정보기술(IT) 기업들을 선호하면서 인재확보가 어려워진 데 따른 것이다.

채용 전문기관인 마이클페이지의 산지브 샤르마는 "이전에는 투자은행(IB)이 미국 대졸자가 제일 선망하는 직종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몇년 전까지도 월가에 넘쳐나던 우수대학 졸업자들이 실리콘밸리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서치 업체 유니버섬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 사이에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 경영학석사(MBA) 학생들은 구글과 아마존·애플 등 실리콘밸리의 기술기업 세 곳을 월가 최고 은행으로 꼽히는 JP모건보다 선호했다. 세계 최고 경영대학원 중 하나로 꼽히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MBA과정인 와튼스쿨 졸업생들 중 IT 분야에 취직한 졸업생은 올해 13.5%로 지난 2008년의 5.6% 대비 3배 가까이 늘었다. IT 선호는 전공선택에서도 드러난다. 전미교육협회(AERA) 조사에 따르면 미국 대학생 중 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STEM) 전공을 고려하는 학생 수는 2007년에서 2011년 사이 48% 증가했다.



우수한 두뇌들이 고액연봉을 제시하는 월가를 외면하는 것은 금융위기를 계기로 월가에 대한 비판이 커진데다 일주일에 100시간 이상 근무해야 하는 높은 업무강도 때문이다. 지난해 BoA 영국 런던지점 인턴사원이 72시간 연속근무 후 과로사한 사건은 은행들의 살인적 업무강도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메릴린치 출신으로 현재 교육업체를 경영하는 스콧 로스탄은 "젊은이들이 금융업계를 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라이프스타일"이라며 "직업 여건상 장기적으로 미래를 내다보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자율적인 업무환경, 도전과 혁신을 강조하는 기업문화를 가져 상대적으로 스트레스가 적은 실리콘밸리 기업들과는 대조적이다.

여기에 실리콘밸리 IT 기업들이 인수합병(M&A) 업무 등에서 월가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직접 금융인재를 스카우트하는 것도 월가 인력확보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특히 구글·페이스북 등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캘리포니아뿐 아니라 시카고·피츠버그·뉴욕 등에 지사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인재 찾기에 나서고 있다.

실리콘밸리와의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한 월가는 대규모 급여인상 외에 직원들의 근무환경도 개선하면서 인재 붙잡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직원들의 주말근무 제한 규정을 신설하는 등 근무시간 단축에 적극 나서면서 올해 월가 은행원들의 '일과 생활 균형지수'는 지난해 6.90(10점 만점 기준)에서 7.09로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해널드헤드헌팅 업체의 제이슨 해널드 대표는 "월가 은행들이 지속적인 혁신 없이 임금만 올려서는 인재를 끌어올 수 없다"며 뛰어난 인재를 차지하기 위한 월가 은행들이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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