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월 17일(음력 1월 26일) 법정 스님 2주기를 앞두고 변택주 전 '맑고 향기롭게' 이사가 법정 스님과 크고 작은 인연을 맺었던 19명을 만나 그들의 각별한 회고담을 담아 책으로 펴냈다.
천주교 신자인 조각가 최종태, 찻잔으로 인연을 맺은 도예가 김기철, 그림으로 시를 쓰는 화가 박항률, 성철 스님의 제자인 원택 스님, 농사꾼으로 변신한 방송인 이계신, 종교의 벽을 허물고 30여년간 교유한 전 천주교 춘천교구장 장익 주교, 20여년 동안 법정 스님의 어머니를 모신 사촌동생 박성직 등 지인들이 기억하는 법정 스님의 면모는 일면 닮았으면서도 다르다.
장익 주교는 스님과 만나서 거창한 얘기를 나눈 건 아니고 그냥 차나 한잔 마시면서 편한 얘기를 나눴으며 아주 편했다고 돌아본다. 천주교 신자들이 많이 따라 생전에 '천불교 교주'라고 불렸을 정도로 법정 스님은 종교간에 벽을 두지 않았다. 원택 스님은 법정 스님의 '오보일기(五步一記)' 일화를 소개한다. 성철 스님의 저서 '본지풍광', '선문정로'를 법정 스님의 도움으로 펴낼 때 원고를 눈이 빠지게 읽다가 가끔 나들이할 때에도 몇 걸음 걷고는 메모하고 또 메모하는 모습을 보고 한 말이다.
진명 스님은 법정 스님에게 퇴박을 놓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시도 때도 없이 불일암을 찾는 바람에 법정 스님이 참기 어렵다고 하니 진명 스님은 대뜸 "스님! 그게 싫으시면 글 쓰지 마세요. 글을 쓴다는 건 사람을 부르는 일입니다. 그 사람들도 많은 고민 끝에 어렵사리 찾아오는 건데 그렇게 예의 없는 사람 취급하시면 어떻게 해요?"라고 윽박질렀다. 그러자 법정 스님은 "진명 말이 맞다"며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이처럼 법정 스님은 때론 종교인으로서 존경할 만한 위인으로, 때론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며 편안한 이웃 아저씨 같은 존재로 지인들에게 각인돼 있다. 저자는 "법정 스님은 지인들을 당신의 색깔로 물들인 게 아니라 재료의 성질을 살리면서도 맛을 더해주는 양념처럼 교유(交遊)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1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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