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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한국은행의 불감증



한국은행 본관 1층에 있는 기자실 옆방은 창고다. 평소 문이 닫혀 있어 가끔 한 번 열리면 지나치며 무심코 본다. 한때는 그림 몇 점이 보관되는가 싶더니 언젠가부터 소파·탁자 같은 가구를 두는 장소로 용도가 바뀐 듯했다.

창고를 떠올린 것은 지난주 국정감사 때였다. 한은이 회사 돈으로 자기 직원의 미술작품을 8,400만원어치 사들였다는 지적이 나왔다. 소파도 등장했다. 하나에 175만원 하는 안락의자(소파)를 20개 사는 데 3,500만원이나 썼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한 국가기관의 국감이 꼬투리 잡기 식으로 흐르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국감 후 만난 한은 사람들이 '그림과 소파' 문제에 대해 "뭐가 어때서"라고 말하는 것을 보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은 담장 안과 밖의 온도 차가 커도 너무 컸다.

꼭 '그림과 소파'가 아니더라도 한은과 바깥세상의 괴리감이 커지는 부분은 적잖게 눈에 띈다. 한은의 제1의 존재 이유는 물가안정이다. 하지만 유례없이 낮은 물가가 장기화하면서 과거 고물가를 방어하는 데 익숙했던 한은은 갈 길을 잃었다. 지난 3년 내내 잘못된 물가안정 목표를 내걸고 있으면서 사과도 뒷수습도 없었다.

가계부채 문제도 심각하다. 말로는 가계부채가 위험수위에 다다랐다고 걱정하면서 지난해부터 네 번이나 기준금리를 내려 불에 기름을 부었다. 나아가 가계부채가 늘어나는 것은 미시적 규제로 막아야 한다며 금융감독당국에 책임을 돌렸다.



최근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금리 동결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의 금리 동결이 발표 나기 하루 전만 해도 한은 내부에서는 9월 기준금리 인상을 확신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이미 해외 소식통들은 기준금리 동결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변화된 기류를 전하는 시점이었다.

한은 직원 1명의 평균 연봉은 지난해 기준으로 9,616만원. 자기 발로 박차고 나가지 않는 한 15년을 채워 차장급이 되면 억대 연봉을 받는다. 올해도 한은 신입직원 채용에는 4,000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렸다. 외풍에서 벗어나 안전한 '신의 직장'에 들어가고 싶은 고단한 젊은이들의 행렬이 이어진 것이다.

기업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매섭게 불고 전셋값 폭등으로 국민의 살림살이는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한은이 단순히 안정적인 직장에 그친다면, 정부의 들러리에 불과한 기관이라면 국민이 한은에 굳이 '독립성'을 부여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국민이 한은 직원들을 선비 혹은 절간의 스님이라고 부를 때 그 비유에는 한은 직원들의 고지식함에 대한 국민의 애정도 일부 담겨 있다. 한국 경제가 서서히 끓어오르는 물속의 개구리라면 한은은 가장 먼저 경고할 수 있을까. 오히려 개구리보다 더 불감증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항상 되돌아볼 일이다.

이연선 경제부 차장 bluedash@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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