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자 푸틴에 도전장… 메드베데프, 홀로서기 성공할까<br>푸틴 '강한 러시아' 기치 내걸고 당·군 장악력 무기로 복귀 노려<br>메드베데프, 경제 개혁 지속 추구… 독재 위험성 경고 등 차별화 나서
지난달 20일 러시아 하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지난 2010년 업무성과 연설에서 "국가가 힘이 없고 외부충격에 대한 대응력도 부족하면 필연적으로 주권 위협을 불러온다"고 말했다. 이날 연설은 러시아의 내년 3월 대통령 선거 레이스가 사실상 시작된 이후 푸틴 총리의 첫 공식 소견 발표였다는 점에서 러시아 안팎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예상대로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강한 러시아' 노선을 재확인했다. 정치적 권위주의 타파와 시장경제 활성화 등을 내세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개혁 노선에 분명히 반대한다는 뜻이라고 러시아 언론들은 해석했다.
현재로선 3연속 연임제한 규정에 걸려 4년간 총리로 물러났던 푸틴이 다시 대통령의 꿈을 이루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가 정부와 당ㆍ군을 장악한 데다 무엇보다 강한 러시아에 대한 향수를 그리워하는 국민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舊)소련식 통제체제로 표현되는 푸틴 시대의 복귀를 두려워하는 이들은 메드베데프가 극적인 반전을 이룰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 도전장 내민 메드베데프 = 메드베데프는 푸틴의 아킬레스건을 치고 나오고 있다. 그는 지난 14일 자신의 정치적 스승인 푸틴 총리를 겨냥해 1인 독재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서면서 푸틴과의 차별화에 나섰다. 메드메데프 대통령은 이날 한 지방도시를 방문해 "한 사람 아래 권력을 집중시키려는 시도는 위험하며 설사 그런 시도가 당장 문제되지 않더라도 가까운 미래에 국가와 특정인 모두에게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 푸틴을 겨냥했다. 그는 이어 "권력 집중이 여러 차례 일어났으며 대개는 정체와 내전으로 이어졌다"며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허용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대권을 향한 야심도 메드베데프 쪽이 선수를 쳤다. 그는 중국에서 열리는 브릭스(BRICS) 정상회의 참석에 앞서 지난달 12일 CCTV와의 인터뷰에서 "차기 대선 출마를 배제하지 않고 있다"며 "지금은 변화를 향해 나갈 시기다"라고 밝혔다. 이에 질세라 푸틴 총리도 곧바로 출마의사를 시사했다. 그는 지난달 13일 "우리 중 누구도 대선 후보가 되는 방안을 배제하지는 않는다"고 말해 사실상 대선출마 의사를 밝혔다. 두 사람은 모두 통합 러시아당 소속으로 당 대선후보를 놓고 겨루게 됐다.
◇ 안정 대 개혁 = 메드베데프 측은 선거 경쟁이 본격화한 이후 푸틴 진영과의 차별화에 주력하고 있다. 아르카디 드보르코비치 대통령 경제담당 보좌관은 지난달 20일 "안정적이고 차분한 발전의 시기가 필요하다"는 푸틴 총리의 발언이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국정 모토인 '현대화'에 역행한다고 정면 비판했다.
특히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자원 의존형의 경제를 첨단기술 경제로 변모시키려는 등 경제 현대화 작업에 주력하고 있다. 러시아는 현재 세계 최대 원유 및 천연가스 생산국이다. 그는 경제 현대화를 위해 ▦ 항공ㆍ우주 ▦ 원자력 ▦ 정보통신(IT) 등을 5대 핵심산업으로 선정하고 러시아판 '실리콘밸리'인 스콜코보 프로젝트(첨단기술 도시)에 심혈을 쏟고 있다.
반면 푸틴 총리는 과거 집권시절(2000 ~ 2008년) 연평균 7%의 고성장을 안겨준 자원 의존형 경제를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지난 2009년 글로벌 경제위기의 여파로 7.9% 추락한 경제를 다시 본궤도에 올리려면 지금의 고유가 시대를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사회변혁으로 러시아가 안정적인 자원 투자처로 다시 부상하면서 푸틴 총리에게 경제적 반사이익이 돌아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 푸틴, 실질 권력은 여전히 장악= 두 사람 모두 아직 출마를 공식 선언하지는 않은 채 대권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푸틴 총리는 지난 6일 노동조합, 청년ㆍ여성 단체 등이 참여하는 친위조직 성격의 정치연합체 '국민전선'의 창설을 주도하고 나섰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지지율 제고를 노리고 고위관료에 대한 사정(司正)과 경찰 개혁 등에 힘쓰고 있다.
하지만 메드베데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년 대선의 향배는 결국 푸틴의 뜻에 달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당권은 물론 군부까지도 푸틴이 장악하고 있고 러시아 재벌인 올리가르히도 푸틴쪽에 가깝다. 러시아 정치분석센터의 파벨 살린 연구원은 "러시아에서는 천연자원과 금융 등을 지배하는 자가 최고 권력자인데 그는 푸틴"이라며 "현재 정치지형에선 누가 대선 후보가 되는 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은 "메드베데프는 대선정국을 맞아 중대 결단을 내려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며 "그가 최근 공격적 행보를 보이는 것도 손 놓고 있다간 레임덕이 가속화할 것이라는 위기감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했다.
메드베데프가 이대로 푸틴의 벽 앞에 주저앉을 지 아니면 대선 결과를 떠나 지금까지의 개혁 노선을 견지하기 위해서라도 과감한 승부수를 또 던질 것인지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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