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들어 실시된 인사청문회에서 장관 후보자가 공직 퇴임 후 대형 법무법인(로펌)으로부터 월평균 1억원의 보수를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관예우 논란으로 여론이 들끓었다.
고위 공직자의 인사 검증이 있을 때마다 비싼 몸값의 실상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끊임없이 사법 개혁을 외치지만 공직에서 떠난 지 얼마 안된 변호사가 주요 사건을 싹쓸이하는 병폐는 여전하다. 오히려 더 극성이다. 물론 당사자들은 전관예우가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국민은 드물다.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판사 재직 시절 평소 변호사의 사무실 출입을 막았는데 어느 날 어떤 변호사가 불쑥 들어와보니 법원에서 모시고 일했던 부장판사였다"고 회고했다. 엄격한 성품으로 소문이 자자했던 이 부장판사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새까만 후배들에게 '이 재판부가 심리하는 사건을 맡았다'며 깍듯이 인사했다. 이 변호사는 "인사를 받고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전관예우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단적으로 말해주는 사례다.
전관이 직접 찾아오지는 않더라도 이런 저런 인맥을 통해 우회적으로 압력이 들어오기도 한다. 한 현직 검사는 평소 "피의자를 원칙대로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하던 부장검사가 갑자기 "피의자를 선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라"고 지시해 당황했던 경험담을 털어놓기도 했다.
전관예우가 형사 피의자의 유무죄 여부나 소송의 승패에만 영향을 주는 게 아니다. 공직 인사에도 전관의 손길은 미친다. 로펌 소속 전관에 '찍혀' 지방 한직으로 쫓겨갔다는 판검사의 뒷얘기는 서초동에서 공공연히 떠돈다.
전관예우의 연결 고리에는 대형 로펌이 자리 잡고 있다. 로펌이 판검사는 물론 경제부처 관료 같은 비법조인 출신을 받아들여 법과 행정의 물을 흐리기도 한다. 최근에는 로펌에 근무하다가 다시 공직으로 복귀하는 전관들이 많아 로펌이 사실상 전관과 공직을 연결하는 '터미널'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로 정홍원 국무총리와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대형 로펌에 있다가 다시 공직으로 돌아왔다. 검사 출신인 정동기 전 대통령실 민정수석과 김경한 전 법무부장관을 비롯해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한덕수 전 국무총리 모두 대형 로펌을 거쳐 공직에 복귀했다.
2011년 전관예우를 막기 위해 '전관예우금지법'을 시행하고 있지만 전관 출신의 영입을 통해 로펌이 사건을 싹쓸이하는 수임 관행은 오히려 예전보다 더 심해지고 있다. 한 개인 변호사는 "로펌 소속 전관들이 사건을 모두 털어가는 통에 영세 변호사들은 힘들다"면서 "전관예우가 법과 원칙을 허무는 동시에 법률 시장을 왜곡해 국민에게 피해를 입히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관예우를 타파하려는 법조계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법조일원화와 평생법관제는 전관의 배출 수를 점차적으로 줄여나가자는 취지로 도입된 제도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존경받는 법조 경력자를 법관으로 임용하는 제도를 통해 전관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근본적인 치유책"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유명무실한 전관예우금지법 대신 판검사를 포함한 4급 공무원이 퇴직 후 로펌에 갈 때 취업 심사를 강화하자는 공직윤리법 개정안도 전관예우를 뿌리 뽑기 위한 제도적 접근이다.
전문가들은 보다 근본적인 대책도 필요하다는 데 입을 모은다. 전관, 즉 선배 기수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법조계가 기수 문화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선종문 서울지방변호사회 부회장은 "공고한 기수서열 때문에 법조계에서 선배 기수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면서 "공직 활동 중에 얻은 경험과 지식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이를 치부하는 데 사용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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