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문제가 아시아와 유럽의 정치외교적 난제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지중해를 통해 밀려드는 난민으로 골치를 앓고 있는 유럽연합(EU)이 결국 병력을 동원한 군사작전 카드까지 꺼내 들어야 할 지경에 이르렀고 동남아시아에서는 미얀마 출신의 로힝야족 난민들이 주변국으로부터 입국을 거부당해 해상을 떠돌면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의 외교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1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EU 외무장관과 국방장관들은 이날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 지중해상의 난민 참사를 방지하고 불법 난민 유입을 막기 위한 군사적 해결 방안을 논의한 뒤 난민선 출발 지점인 리비아 해안에서 군사행동에 돌입하는 방안을 승인했다.
페데리카 모게리니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EU의 군사작전이 다음달에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승인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EU 해군의 지중해 작전은 이탈리아 로마에 사령부를 두고 이탈리아 해군의 엔리코 크레덴디노 소장의 지휘를 받게 된다.
지난달 23일 열린 긴급 EU 정상회의에서는 밀입국업자 단속과 이들이 소유한 난민선을 파괴하는 등의 군사작전을 전개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난민 밀입국에 사용되는 선박을 난민 탑승 전에 적발해 파괴하는 방안이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EU 해군은 공해상 무국적선에 대한 검문검색을 강화해 어선을 가장한 밀입국 선박을 가려내고 밀입국 업자를 체포하는 작전을 구상하고 있다. 이번 결정은 다음달 열리는 EU 정상회의에서 최종 추인될 예정이다. 이미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스페인 등 주요 5개국은 군사작전을 위한 군함 및 병력 제공 의사를 밝혔다.
EU가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해 정치외교적 방안 대신 군사작전 카드를 빼어든 것은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1년 반 사이 지중해를 건너다 희생된 난민만도 5,000여명에 달하는 등 난민 참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또 밀려드는 난민 수용 문제로 EU 회원국들의 고민이 깊어지는 상황에서 난민 밀입국조직을 퇴치해 난민 유입을 원천 차단하는 것이 시급한 대책으로 떠올랐다.
동남아에서는 미얀마 출신 로힝야족 난민과 일자리를 찾아 다른 나라로 가려는 방글라데시 이주자 수백명을 태운 선박들이 태국·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해안에 걸친 바다 위를 떠돌면서 이 지역의 새로운 갈등요인이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날도 태국 영해 밖으로 쫓겨난 로힝야족 난민선 한 척이 이틀 넘게 행방불명 상태라고 태국군과 인권운동단체 등은 밝혔다. 이 난민선은 난민 300명을 태운 목선으로 지난주 태국과 말레이시아 인근 해역에서 발견됐다가 영해 밖으로 밀려났으며 16일 이후 소재가 파악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아세안은 전통적으로 회원국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데다 구속력이 없는 협의체 역할을 하고 있어 로힝야족 난민 사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아세안은 역내에서 큰 정변이나 대규모 재난, 인도주의적 위기 등이 발생해도 이에 개입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