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에서 쏟아지는 비는 무대를 온통 물바다로 만든다. 11명의 배우들은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물 속에서 물장구 치고 공 놀이 하며 줄넘기에 미끄럼까지 탄다. 어른이 되면서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추억 한 편이 되살아나는 순간 눈빛만으로도 통할 것 같은 깊은 교감과 소통, 서로에 대한 애착이 싹튼다. 지난 24일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린 캐나다 서커스 제작사 '서크 엘루와즈'의 아트서커스 '레인(RAIN)'의 피날레다. 대극장의 무대 위에서 비가 쏟아지는 것은 상상조차 어려웠지만 기발한 아이디어와 발상의 전환은 전혀 새로운 무대를 선사했다. 10여분 동안 사정없이 쏟아지는 비와 물장구를 치는 데 필요한 물을 대기 위해 2톤의 물이 사용됐다. 믿을 수 없는 장면이 눈 앞에서 펼쳐지는 순간 객석에서는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아트 서커스 '레인'은 한 남자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첫 폭풍우가 치던 날 골목길에서 놀아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옷을 차려 입고 빗속에서 놀았어요. 신발까지 신고 있었지요. 이것이 자유에 대한 나의 기억 전부입니다. 아주 아름다운 자유…빗속에서 놀아본 적 있나요?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일입니다." '레인'의 주요 줄거리는 서커스 리허설 중인 한 극장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현실과 비현실이 뒤섞인 가운데 젊은 남녀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가 펼쳐지고 어린 시절 헤어졌던 친구들과의 추억이 한 조각씩 되살아난다. 일렉트릭 사운드와 보사노바 풍의 음악을 배경으로 아크로바틱 묘기와 다양한 퍼포먼스 등이 결합하며 빛과 조명, 음악과 드라마가 더해진 한 편의 뮤지컬과도 같은 서커스다. 무대 위에 놓인 피아노가 라이브로 연주되고 배우들은 피아노에 기대 직접 노래를 부르면서 동료가 고난도 아크로바틱을 성공할 때마다 관객처럼 환호성을 내지른다. '레인'은 아트서커스라는 이름 그대로 서커스에 미학을 접목해 마치 한 편의 뮤지컬처럼 펼쳐지면서도 완성도 높은 아크로바틱이 세련된 방식으로 삽입돼 서커스의 정체성까지 놓치지 않았다. 기교 넘치는 퍼포먼스와 아크로바틱 등 순간 순간의 볼거리에 치중했던 태양의 서커스 '바레카이'와 비교되는 대목이다. 어린 시절 누구나 경험했던 놀이를 서커스적인 감각으로 풀어낸 점도 독창적이면서 기발했다. 굴렁쇠 놀이는 배우들이 자신의 키 높이만한 물레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면서 때로는 물레 속에 들어가 스스로 원을 그리며 환상적인 묘기를 선보였으며 배우들이 널판지 양쪽에서 점프를 하며 서로를 공중으로 띄우는 묘기는 시소 놀이를 연상시켰다. "우산을 펴지 마세요. 삶이 몸에 뿌려지게 내버려두세요. 행복은 비와 같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내려와 떠나고 싶을 때 떠나버리지요. 하지만 그때의 기억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에필로그에서 한 배우가 관객들에게 들려준 독백처럼 아트서커스 '레인'에 대한 기억도 길고 깊은 여운으로 남을 것 같다. 7월 1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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