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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창극 '안드레이 서반의 다른 춘향'

'드레스 입은 춘향' 신선… 정체성은 오락가락

외국인 연출가 시각으로 캐릭터 등 현대적 재해석

무대 뒤 대형 스크린 등 오히려 몰입 방해하기도


원재료의 향이 너무 강했던 것일까. '다름'을 강조한 새로운 조리법과 향신료는 분명 신선했지만, 재료와 어우러지지 못한 채 낯선 음식을 만들어 냈다. 한국의 전통 러브스토리 '춘향'을 외국인 연출가의 시각에서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창극 '안드레이 서반의 다른 춘향(이하 다른 춘향·사진)'은 원작을 실험적인 시각으로 재조명, 색다른 재미를 선사했지만 과한 욕심 탓에 작품의 정체성은 오락가락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다른 춘향은 과감하게 한복을 벗어 던졌다. 정절의 상징 춘향은 노란 저고리 대신 튜브톱 드레스를 입은 당돌한 여인으로, 이몽룡은 클럽을 즐겨 찾는 대학생으로 변신한다. 스토리는 원작의 흐름을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캐릭터와 상황 설정은 현대적으로 재탄생했다. 정치인 아버지를 따라 남원에 내려온 몽룡이 춘향과 사랑에 빠져 결혼을 약속하지만, 아버지의 발령 후 서울로 떠나고 그 사이 신임 시장 변학도가 자신을 거부하는 춘향을 명예훼손과 반역죄로 감옥에 가둔다. 원작이 춘향과 몽룡의 러브스토리라면 다른 춘향에선 그녀의 정절을 사회 정의의 표상으로 확대한다. 춘향이 '이상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저항하는 영웅이라면 몽룡은 사랑에 무책임한, 온실 속에서 자란 부잣집 도련님 정도로 그려진다. 미묘하게 변형된 설정 덕에 결말 역시 마냥 들뜬 사랑의 축제 분위기는 아니다.

'다른' 춘향을 위해 시도한 일부 장치는 그러나 '원래' 춘향의 잔향만 풍기며 방황한다. 보란 듯이 한복을 벗어 던진 배우들이 연기를 펼치는 동안, 무대 뒤 대형 스크린엔 같은 배우들이 한복을 입고 연기하는 영상이 투사된다. 무대 위 현실과 영상 속 전통을 동시에 제시해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두고 싶었다는 게 연출의 의도지만 이 친절함(?)이 오히려 작품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든다. 판소리에 등장하는 고어(古語)가 무대 양 측면에 해석 자막으로 표시되는 상황에서 배우와 판소리 외에 너무도 친절하게 원작을 살리려는, '굳이 한복을 다시 입혀 만든 영상'이 필요했는지는 의문이다.



수시로 객석을 통과해 등장하는 배우들은 관객의 참여와 추임새가 중요한 창극을 한층 풍요롭게 한다. 다만 무대 한 켠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도창(導唱) 배우들이 기자처럼 변학도 취임이나 생일 파티를 중계하는 장면에선 실제 객석과 무대 현장이 스크린에 등장하며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진다. 다른 캐릭터, 다른 무대, 다른 연기. 색다른 도전은 분명 의미 있지만, 전반적으로 정돈 안 된 욕심이 아쉽다. 12월 6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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