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전의 일이다. 미국에는 IBM이라는 큰 회사가 있었다. 대형 컴퓨터를 주로 만들었지만 개인용 컴퓨터 분야에도 진출해야겠다고 결정했다. 그래서 하청업체로 찾은 곳이 당시 중소·벤처기업 규모였던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MS)였다. 칩 분야는 인텔에, 운영체제는 마이크로소프트라는 작은 벤처기업에 맡겼다. 그리고 30년이 흘렀다. 지금은 IBM보다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가 훨씬 더 큰 회사가 됐다. 하청을 받던 중소·벤처기업이 원청기업보다 더 큰 회사가 된 것이다.
우리 경제도 이렇게 역동적인 변화가 가능한 산업 구조로 개혁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100대 부자들은 74명이 상속자형이고 26명이 자수성가형이다. 미국은 정반대다. 70명이 자수성가형이고 30명이 물려받은 이들이다. 우리나라보다 더 잘사는 미국이 더 역동성 있는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는 왜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기 힘들까. 올해 초 터진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만약 '땅콩 회항' 사건이 미국에서 일어났다면 어떻게 됐을까. 주가는 반 토막이 나고 예약은 줄줄이 취소되는 사태가 일어나고 경영진도 사임했을 것이다. 그런데 대한항공 주가는 오히려 올랐다. 유가 하락에 따른 이익의 폭이 더 클 것으로 시장에서 판단한 것이다. 물론 항공 시장 규모의 차이 때문에 직접 비교는 힘든 면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특정 기업이 시장에서 지배적 위치에 있으면 큰 실수를 해도 등수가 잘 안 바뀌고 큰 노력을 안 해도 계속 1위를 유지할 수 있다.
세계적인 인터넷 검색 엔진인 구글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구글의 시작화면은 매우 단순하다. 얼핏 보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장사'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상은 다르다. 내부 기능은 매일 치열하게 바뀌고 있다. 엄청난 연구개발비를 쏟아부어 기능을 향상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치열하게 연구개발(R&D)에 매진하는 것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빙을 비롯한 경쟁자들이 치열하게 따라오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자들은 거의 매일 새로운 방법을 개발해 열심히 구글을 쫓고 있다. 구글은 쫓아오는 경쟁자들보다 더 많은 투자를 한다. 실력으로 1등을 유지하는 것이다.
큰 노력을 하지 않아도 계속 1등을 할 수 있는 산업구조와 치열하게 실력으로 1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산업구조는 이렇게 다르다. 치열한 경쟁의 가장 큰 수혜자는 두말할 것도 없이 소비자다. 대기업 자신이 그다음 수혜자다. 글로벌 경쟁시대에 장기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실력을 기르는 일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를 위해서도 기업을 위해서도 우리 산업구조는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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