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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생 취업시켜달라는 부탁이 그렇게 많이 들어옵니다. 학교든 클라이언트든 여러 경로로 얘기가 들어오죠."(대형 로펌 대표변호사 A씨)
지난 3월 제1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하며 예비 법조인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졸업생들의 현실은 예상대로 가혹했다. 주요 로펌에서 흡수한 로스쿨 출신 변호사가 90여명에 그치면서 법원과 검찰로 진출한 인원을 포함해도 1,500명에 달하는 1기생 가운데 상당수가 취직하지 못했다. 변호사 시험을 통과했더라도 적어도 6개월간 실무 경험을 쌓아야 정식 변호사로서 활동을 할 수 있는 조건 때문에 로스쿨을 졸업한 이들의 취업 전쟁은 더욱 치열하게 변했다.
1기생들의 취업은 로스쿨 2학년인 지난 2010년께부터 진행됐다. 하지만 이 때는 사회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던 일부 고(高)스펙 보유자에 한해 채용이 이뤄졌고 나머지 사람들은 변호사시험에 합격해 변호사가 된 지난 3월 이후에도 일자리를 찾지 못해 이곳저곳 민원을 넣고 다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지방 로스쿨을 졸업한 양모씨는 자신의 고향인 서울에서 일자리를 잡고 싶은 마음에 로펌 이름이나 크기를 가리지 않고 로스쿨생을 뽑아준다는 곳이면 어느 곳이나 여러 차례 원서를 냈지만 인턴으로만 잠깐 일하는 게 끝이었다.
주요 로펌들은 서울대를 중심으로 소수의 유명 로스쿨에만 리쿠르팅을 실시했고 이 때문에 일부 학교는 리쿠르팅 기회를 늘리기 위해 로펌 측에 간청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학교가 나서서 알음알음으로 자기 학교 학생들의 취업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현실은 막연하기만 하다.
취업 시장에서 언제나 후순위인 여성은 로스쿨을 졸업해 변호사 시험에 통과했다고 하더라도 보수적인 업계의 분위기와 맞물려 수상경력이나 회사경력이 없다면 비슷한 조건의 남학생들보다 더욱 취업이 힘든 모습이다.
한 변호사는 "친한 변호사가 로스쿨에서 강의를 하는데 '학교 사정을 봐서라도 한 명 해결해야 할 것 같다'고 간곡하게 부탁을 해 뽑았다. 그렇게 들인 친구와 지금 송무 일을 함께 보고 있다"며 로스쿨생의 취업 현실을 전했다.
로스쿨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일반 회사를 다녔거나 회계사, 노무사 등의 자격증이 있는 '사회 유경험자'들은 그나마 공부만 해 온 동급생들보다 상황이 나은 편이다. 취업도 민원보다는 경력을 내세우는 방향으로 잡는 게 일반적이다.
유명 회계법인에서 3년간 근무하다가 로스쿨로 발길을 돌려 최근 모 로펌에 취직한 회계사 김모(30대 남성)씨도 자신의 장점을 긍정적으로 살린 사례 중 하나다. 남들이 알아주는 금융공기업에서 4년간 일하면서 관련 업계의 생리를 파악한 최모(30대 여성)씨도 경력을 내세워 손꼽히는 로펌의 자문변호사로 취직하는 데 성공했다.
로스쿨 출신 예비 법조인들의 취업난이 심각해지면서 일부이긴 하지만 예비 법조인들끼리 서로를 헐뜯는 촌극까지 벌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사법고시 수험생들이 잠재적 경쟁자인 로스쿨 재학생을 가리켜 부르는 '로퀴'라는 단어다. 상대에 대한 경멸적인 시선을 담은 이 단어는'로스쿨'과 '바퀴벌레'를 합쳐놓은 말이다.
업계는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에 적잖이 당황하는 눈치다. 대형 로펌의 파트너변호사인 윤모씨는 "처음 '로퀴'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며 "경쟁이 갈수록 심해지는 상황 때문에 상대를 비하하고 헐뜯는 모습이 보여 안타깝다"고 말했다.
재학생들은 로스쿨을 낮춰보는 바깥의 시선도 힘들지만 스스로를 '언젠가 사라질 법조계의 사생아'라고 자조하는 분위기도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로스쿨의 구조적 한계를 지적하며 '사법시험을 그대로 두자'는 선거공약이 나오는 현실 아래서 자신과 로스쿨의 미래를 안정적으로 볼 수만은 없다는 것이 학생들의 항변이다.
지난해 유명 사립대학 로스쿨에 진학한 박모씨는 "1~2기는 경력이 화려했다고 들었다"며 "요즘은 학부에서 바로 진학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예전처럼 기대도 크지 않고 회계사처럼 평생 가는 자격증을 따는 것으로 생각하고 오는 셈"이라고 말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올해 로스쿨에 들어온 권모씨는 자신이 내린 진학 결정에 대해 "기대가 높은 만큼 실망도 크다"고 짧게 답했다.
로스쿨 학원가 분위기도 로스쿨 제도 도입 초기와는 크게 다르다. 당초 '법학적성시험(LEET)지원자가 많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주를 이뤘지만 예측은 빗나갔다. 손은진 메가스터디 전무는 "로스쿨 학원 수강생은 매년 조금씩 늘고는 있다"면서도 "처음에는 (학생들이) 많이 몰릴 거라고 예상했지만 과도기(사시와 공존하는 시기)에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그런 분위기는 아니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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