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연합(EU)의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한 대러시아 경제제재로 유럽 기업들의 타격도 커지고 있다. 당초 많은 유럽 기업들은 수출감소 등을 우려해 제재에 소극적이었으나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MH17편) 격추사건 이후 정치권의 제재 방침에 동조하는 모양새다.
러시아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독일 기업들의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의류 업체 아디다스는 2·4분기 순이익이 전년비 16% 급감한 1억4,400만유로라고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밝혔다. 러시아 등 동유럽권 매출 부진에 올해 월드컵 마케팅 비용이 겹친 탓이다. 아디다스 측은 제재의 여파로 이 지역 신규 진출계획을 일부 축소하기로 했으며 역내매장 폐쇄도 가속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유럽 최대 완성차 업체인 폭스바겐의 올 상반기 대러 수출물량은 전년비 8.1% 줄었다. 독일 상공회의소는 올 한해 자국의 대러 수출액이 전년비 17%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러시아와 북극해의 에너지 개발을 추진하던 유럽 에너지 기업도 울상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러시아 국영 에너지 기업 로스네프트와 합작사를 만든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스타토일·Eni 등의 신규 투자 및 기술 수출이 대러 제재 이후 막혔다. BP는 이와 관련해 장래 실적이 하락할 수 있다고 투자자들에게 경고했다. 프랑스 에너지 기업 토탈 역시 러시아 가스회사 노바텍 지분매입을 잠정 중단한 상태다. 해양 플랜트 업계의 강자인 테크닙도 "대러 제재로 향후 2년간 영업이익률 목표를 각각 1~2%포인트 낮췄다"고 전했다.
프랑스 르노자동차는 같은 기간 러시아 수출이 8% 줄었다. 러시아 수출길이 막힌 방위산업체의 타격도 예상된다. 당장 프랑스 DCNS사의 헬리콥터 착륙장 6개를 갖춘 미스트랄급 상륙함 2척의 수출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반대로 러시아산 티타늄에 크게 의존하는 항공기 제작사 에어버스의 원활한 원자재 조달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이 같은 손해에도 불구하고 유럽 기업들은 러시아 제재에 동조하는 분위기다. 유럽 산업계는 당초 러시아산 에너지 공급 차질과 수출하락을 염려해 제재를 꺼렸지만 말레이기 격추 이후 유럽 내 여론이 크게 악화되자 방향을 틀었다. 디터 체체 다임러AG 최고경영자(CEO)는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정치권이 설정한 프레임을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다"며 "(현 시점에서) 잠재적 충격을 따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울리히 그릴로 독일산업연맹(BDI) 회장도 "대러 제재가 유럽 산업계에 가할 타격이 크다고 해서 이를 배제할 수는 없다"면서 "러시아는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러시아를 단죄해야 한다는 여론이 기업들 사이에서도 힘을 얻는 가운데 EU는 지난달 31일 스베르방크를 비롯해 러시아 국영은행 5곳의 유럽 금융시장 퇴출을 골자로 한 '3단계 제재'의 구체안을 공개했다. 특히 러시아 최대 상업은행이자 러시아 금융자산의 절반을 차지한 스베르방크가 대상에 오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분석가들은 "이번 EU의 제재안은 미국이 내놓은 안(案)보다 러시아 경제에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FT는 전했다. 러시아 외교부도 "유럽에 공급하는 천연가스·원유 가격을 올리겠다"며 보복 의사를 밝혔다.
한편 디폴트(채무불이행) 가능성이 제기됐던 우크라이나는 간신히 위기를 넘겼다. 우크라이나 의회는 지난주 사직서를 제출했던 아르세니 야체뉴크 총리의 재신임을 31일 의결하는 동시에 정부가 제출한 예산확보용 세제 개혁안을 승인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우크라이나에 170억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정부의 재정긴축 등 구조개혁을 요구해왔으며 의회는 이를 둘러싸고 격한 대립을 겪었다. 야체뉴크 총리는 "우크라이나는 아르헨티나와 달리 절대로 디폴트를 선언하지 않겠다"며 의회에 감사를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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