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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구상하면 재미없고 뻔해… 여러번 작업 않고 한번에 그리죠"

개인전 갖는 이인섭 화백

해외파 작가 한국적 느낌부족 아쉬움

이인섭 화백이 19일 오후 서울 중구 조선일보미술관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송은석 기자

#한옥을 지을 때 목수는 나무부터 깎는다. 기둥과 들보, 창살까지 여러 달에 걸쳐 준비하고서야 비로소 집을 짓기 시작한다. 들보를 올리면 집짓기는 일사천리다. 이인섭 화백도 마찬가지다. 먼저 캔버스에 바탕 물감을 칠하는 작업이 먼저다. 여러 번 색을 입히고 대리석 가루를 뿌려 울퉁불퉁한 질감을 낸다. 그렇게 몇 달 일할 캔버스를 다 만들면 작업 시작이다. 작업시간은 작품당 5~6시간, 하루에 끝내는 게 원칙. 그리는 순간의 정서가 그에게는 중요하다. 그래서 유화보다는 아크릴물감을 쓴다. 유화는 물감 마르는 시간 때문에 작업이 서너달까지 걸리기 때문. 그래서 전시에서 선보이는 50여점의 그림 중 1작품만 유화고, 대부분은 올해 그린 것이다.

"어떻게 그린다는 구상을 갖고 작업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리면서 생각하죠. 회화에 자꾸만 이론을 이야기하는데, 그렇게 정해놓으면 결과물이 너무 뻔하지 않나요. 예전에 하이퍼(극사실주의) 작업도 했지만, 그건 어느 정도 숙련되면 비슷해집니다. 그럼 재미없죠. 내 경우 시간 두고 여러 번 작업하면 그림을 망쳐요. 한 번에 마쳐야 호흡이 충분히 들어갑니다."

작가 이인섭(63)이 서울 정동 조선일보미술관에서 개인전 '어성전의 사계'를 열고 있다. 30여 년 전부터 일해온 양양 현북면 어성전리 작업실에서 느낀 계절의 변화를 화폭에 담았다. 그림에는 산 속 새와 나무, 꽃 등이 어우러지며 자연스러운 따듯함이 느껴진다.



"언젠가 지구의 최적 인구는 1억 명 정도라는 얘기를 들은 적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어려우니, 그림에서라도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겁니다. 아침이면 딱따구리 소리가 잠을 깨우고, 봄이면 매화나무를 심으며 시골살이 덕분에 인성이 좋아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살아있다는 것, 그 행복을 느끼려 그림을 그립니다."

서울미술협회 이사장이기도 한 그는 해외 유학을 다녀온 작가들의 성향에 우려를 표시했다. "해외에서 접한 스타일로 작업하는 작가들이 많은데 자신만의 것, 한국적인 무엇이 잘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통적인 서양 화풍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독자적인 작품을 그린다는 건 쉽지 않아요.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만드는' 느낌이랄까요." 전시는 6월 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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