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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눈부신 기술 발전만큼 세상은 풍요로워졌나

■기술과 문명(루이스 멈퍼드 지음, 책세상 펴냄)<br>산업화 이뤄준 과학 발달 인간 삶 오히려 황폐화시켜<br>지성·상상력 등 십분 발휘 기계시대 습관서 벗어나야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 1919~1929년 미국에서는 200만명의 노동자가 공장에서 해고됐지만 생산은 오히려 늘었다. 당시 미국 인구의 10% 정도면 대부분의 공산품과 기계장치들을 생산하는 데 문제 없었다. 이를 근거로 벤저민 프랭클린은 노동의 확산과 기득권층의 소멸을 통해 모든 필수품의 생산이 하루 5시간 노동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리고 100여년 과학과 기술이 경쟁하듯 생산 자동화를 이끌었고, 효율성은 눈부시게 향상됐다. 하지만 아직도 지구 한 편에 하루 종일 일하고도 굶는 사람이 있고, 예외 없이 어느 사회나 빈부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인간을 고된 노동에서 해방시켜 주리라 믿어졌던 기술과 기계, 그리고 과학은 왜 보편적 풍요에 대한 기대를 저버렸을까.

지난 1990년 95세로 사망할 때까지 철학ㆍ역사ㆍ도시계획ㆍ심리학ㆍ생물학ㆍ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며 총 28권의 저서를 출간한 저자는 기술과 기계의 발전을 문명사적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는 10세기부터 산업혁명 이전인 18세기까지를 '원기술 시기', 산업산업혁명부터 20세기 초반까지를 '구기술 시기', 그 이후를 '신기술 시기'로 나눈다.

통상 산업혁명을 기계시대로의 전환점으로 생각하지만, 그는 그 이전에 시계ㆍ인쇄기ㆍ화약ㆍ종이 같은 발명이 산업혁명을 받쳐준 준비기간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시계는 시간을 준수하는 습관을 보편화해 수송과 산업의 분업체계에 기여했다. 전쟁은 14세기 이후부터 기계화를 부추기고 다시 군사주의를 강화해 표준화된 대규모 산업 발전으로 이어졌다.

구기술 시기로 들어오며 노동은 삶의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라 목표 그 자체가 됐다. 기계의 발달과 도시로의 인구 유입, 높은 출생률은 노동자들을 가난과 되풀이되는 궁핍으로 옭아 넣었다. 석탄과 철은 그 중심에 존재했고, 무모함과 한탕주의, 승자 독식주의라는 광업의 습관은 사회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저자는 이를 '전쟁 상태로 묘사될 수 있다'고 잘라 말한다. 인간의 목숨을 파리의 목숨처럼 여기는 생존경쟁, 지배와 굴종, 절멸의 분위기가 가득했다.



이 책에서 그는 전보, 라디오, 전화, TV 등 의사소통의 시간ㆍ공간적 한계를 뛰어넘는 기계장치의 발전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봤다. 시간이 흐를수록 의사소통의 범위가 확대되겠지만, 그 반대편의 쓰기ㆍ읽기ㆍ그리기ㆍ반성적 사고와 세심한 행동 같은 경제적인 추상 수단들은 약화될 것으로 봤다. 축음기가 보급되니 악기 배우기를 그만두고, 마취제가 고안되니 불필요한 수술이 늘어 사망률이 증가했듯이.

또 기계화가 가져온 더 엄격한 시간 조정과 즉각적인 의사소통이 사람들의 시간을 파편화시키고 주의력을 흩트렸다고 지적한다. 현재 기계적 요구에 지적으로 대응하고 검증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채 기계를 증대시키고 있고, 외부에서 밀려드는 자극 속에 내면은 실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분간하지도 못한 채 점점 메마르고 형체를 잃어간다는 것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기계를 포기하거나 수공업으로 돌아가라는 얘기가 아니다. 인간의 상상력ㆍ지성ㆍ사회적 절제력을 십분 발휘하라고 주문한다. 기계 사용이 부적절한 영역, 폐기처분할 영역, 비효율적이어서 조절이 필요한 영역을 분별해낼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기계가 인간의 목표 달성에 유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의 초판이 나온 지 80년, 저자가 유명을 달리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저자의 혜안은 여전히 유효하다. 3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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