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외환전문가들 사이에서 지난 40년 동안 꾸준히 이어진 엔고(円高) 기조가 올해 마침내 전환점을 맞을 것이라는 예측이 조용히 확산되고 있다. 아직은 소수파의 전망에 불과하지만 기록적인 엔고 추세가 올해 종지부를 찍고 앞으로 장기적인 엔화 하락세가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이 심심찮게 흘러 나오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일 지난 40년 동안 꾸준히 상승해온 엔화가치가 올해를 기점으로 약세로 돌아설 수 있다는 '엔저 시나리오'를 소개했다.
엔고에서 엔저로의 기조전환이 예고되는 근거는 수십년 동안 외환시장에서 나타났던 엔화 가치 등락 사이클이다. 일본개인투자가협회 이사인 기무리 기요시 애널리스트는"엔ㆍ달러 환율은 16년6개월마다 중요한 전기를 맞았다"며 "엔화가치가 달러당 75엔대를 돌파하며 사상최고치를 기록한 지난해 10월을 기점으로 환율은 새로운 사이클에 접어들었다"고 주장했다.
미쓰비시UFJ 모건스탠리증권의 미야타 나오히코 애널리스트도 "2012년은 엔저시대가 열리는 해"라며 "1971년 '닉슨 쇼크' 이후 40년간 이어져온 장기 엔고추세가 대전환을 맞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미야타 애널리스트는 16년6개월 사이클에 더해 13년6개월마다 엔화가치가 저점을 찍어왔다고 주장했다. 닉슨 쇼크 이후 플라자합의로 엔화가 급등하기 직전인 1985년 2월, 1998년 8월까지 엔화가치는 13년6개월마다 바닥을 쳤다는 것이다. 그는 "올 초는 16년6개월과 13년6개월이라는 두 가지 장기 사이클이 맞물리는 시기"라며 "장기 추세의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예측했다.
이에 앞서 월스트리트저널(WSJ) 일본판도 와카바야시 FX어소시에이츠의 분석을 인용해 엔화가치의 장기상승 추세가 올 2월을 기점으로 하락 반전할 것이라는 전망을 소개했다. 이 회사의 와카바야시 에이시 대표는 "162개월을 주기로 움직이는 외환시장의 현 사이클이 올해 2월에 종료된다"며 "이후 오는 2025년까지는 장기적인 엔저 기조가 이어지면서 일본경제가 디플레이션을 벗어나게 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을 제기했다.
사이클에 근거한 기술적 분석이 아니라도 올해 엔고에 제동이 걸릴 만한 근거는 적지 않다. 다른 선진국과 달리 미국 경기가 양호한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미 대선을 의식한 경기부양책이 실시된다면 글로벌 자금이 달러화로 한층 쏠리게 될 가능성이 있다.
최악의 엔저 시나리오는 노다 요시히코 정권이 추진하는 소비세 인상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엔화가치가 붕괴하는 경우다. 니혼게이자이는 일본 신용등급이 그나마 유지되는 이유는 소비세 인상이 이뤄질 경우 재정건전성이 개선될 여지기 있기 때문이라며 만일 여론악화로 증세방침이 좌절될 경우 일본 국채가격이 급락하고 엔화 매도압력이 거세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렇게 되면 일본경제는 엔저에 따른 혜택을 누리기보다 국제신용등급 추락과 재정위기라는 최악의 사태를 맞게 된다.
앞서 일본은행 정책심의위원을 지낸 미즈노 아쓰시 크레디트스위스 아시아태평양지역 부회장도 최근 "일본 국채의 신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면서 "당장 닥칠 일은 아니겠지만 그 결과 최종적으로는 엔저와 금리상승이 동시에 발생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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