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을 해본 사람은 이런 경험이 한두 번쯤은 있다. 아무도 원하지 않은 회식에 참석하는 일 말이다. 개인적으로 물어보면 다들 "지금 회식할 타이밍이냐"고 투덜거린다.
심지어 회식을 명(?)한 당사자도 "귀찮아도 어쩔 수 있느냐"고 한다. 어느 누구도 바라지 않지만 왠지 그러면 안될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혀 울며 겨자 먹기로 회식자리가 만들어진다. 개인 입장에서 보면 튀기 싫어 암묵적 대세를 따른다. 여행지 선정 과정에서 우연히 나온 애빌린을 가기 위해 장거리 이동을 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구성원 누구도 애빌린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는 데서 유래한 '애빌린 패러독스'라고 부르는 현상과 닮았다.
요즘 금융계는 개별 노조, 산별 노조 할 것 없이 시끌벅적하다.
당장 외환은행 노조는 하나은행과의 조기합병 반대를 이유로 각을 세우고 있고 KB국민은행 노조는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행장의 동반 퇴진을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 이런 개별 노조의 집합체인 금융 산별 노조는 '임금 6.1% 인상, 정년 60세 연장, 통상임금 범위 확대' 등을 주장하며 다음달 3일 총파업을 예고했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애빌린 패러독스 현상이 나타난다. 사적으로 행원들을 만나 보면 노조에 지지 입장을 보이는 이는 거의 없다.
"머리띠 두를 때는 아니죠. 고용안정도, 근로조건 유지도 사측에 약속 받았잖아요(외환직원)" "이제 막 한고비 넘겨 협심해서 일해도 모자랄 판국인데 무슨 짓인지(KB직원)" "수익도 떨어지고 희망퇴직으로 나가는 사람도 많은데 보기에 좋지는 않죠. 안 그래도 연봉이 너무 높다는 말이 많잖아요(한 행원)"
노조의 행보와 개인 의사 간에 괴리는 왜 생기는 걸까.
일단 노조의 언로가 제대로 기능하는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응집력이 강한 집단일수록 소통이 차단되기 쉽다. 권위적 집단에서 비판은 눈엣가시 취급을 받는 경우가 흔하다. 이 때문에 입바른 소리가 어려워지고 집단사고가 만연하게 된다.
한편으로 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지 않는 데는 '조직은 망가져도 나만 괜찮으면 된다'는 이기적인 판단이 작용하고 있을 수도 있다.
노조 행보에 떨떠름한 행원들도 월급을 올리고 정년 연장도 해주길 내심 기대할 공산이 크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개개인의 탐욕이 파국으로 치닫는 노조를 사실상 수수방관하는 '나 몰라라'류의 구성원을 양산하는 토양이 될 수 있다. 금융산업이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다.
저금리, 스마트 금융 확산에 따른 인력 및 경영 전략 조정, 정보통신(IT) 기업의 금융업 진출로 인한 경쟁심화 등으로 산업 재편이 불가피하다.
그런데 최근 금융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이런 위기감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노조는 으레 그렇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금융산업은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미증유의 변화를 맞고 있다. 치킨게임식 대응전략은 지지 받기 더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노조는 그럴듯한 명분 뒤에 숨은 욕심을 더 줄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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