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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디’ 브라질의 월드컵 분위기는 개막일에야 달아올랐다. “월드컵 반대 시위를 하다가도 정작 경기가 시작되면 달라질 사람들”이라는 현지 주재원들의 말이 맞았다. 시위가 없지는 않았지만 산발적인 수준이었고 건물들의 한쪽 벽면은 각국의 대형 국기가 뒤덮었다. 브라질과 크로아티아의 월드컵 개막전이 열리기 4시간 전인 12일 오후1시(이하 한국시각)부터 노란 물결이 상파울루 아레나 코린치앙스를 점령했다.
◇킥오프 2시간 전, 유령도시로의 진입=한국 대표팀이 머무는 이구아수 캠프를 떠나 1시간여를 비행, 상파울루주 캄피나스의 비라코포스공항에 도착한 시각이 오후3시였다. 상파울루 시내까지는 약 90㎞. 상파울루의 악명 높은 교통 사정상 2시간 안에 닿기는 어려운 거리였다. 하지만 취재진을 태운 택시는 거침없이 달렸다. 도심에 가까워질수록 속도는 더 빨라졌다. 임시 공휴일인 이날 시민들은 경기장인 아레나 코린치앙스나 시내 음식점 또는 집에서 이미 TV만 주시하고 있었다. 거리엔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개미 한 마리 없었다. 택시에서 내린 시각은 오후4시. 택시기사는 “비라코포스에서 상파울루 시내까지 1시간에 달린 것은 기록적인 일”이라며 웃어 보였다.
◇전반 11분, 군경을 긴장하게 한 마르셀루=숙소에 짐만 놔두고 곧바로 거리로 나갔다. 숙소를 나설 때면 (강도를 만나면 지갑째 내줄 요량으로)100헤알(약 4만5,000원)만 넣은 지갑을 반드시 챙겼지만 이날은 월드컵 개막전. 브라질에선 축구라면 강도도 손을 놓을 거란 판단에 최소한의 대책도 없이 길을 나섰다. 그런데 이게 웬걸. 11분 만에 선제 골을 내줬다. 브라질이 아닌 크로아티아가. 그것도 레알 마드리드의 자물쇠 마르셀루의 자책골로. 음식점 등에서 왁자지껄하게 응원하던 사람들의 얼굴이 차갑게 식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블럭마다 10여명씩 배치된 군경들의 얼굴에도 동시에 긴장이 흘렀다.
◇전반 29분, 우리는 그럴 줄 알았다=크로아티아의 예상 밖 공세에 두 번째 실점까지 걱정되던 바로 그때, 브라질의 ‘아이돌’ 네이마르가 날았다. 낮게 날아간 슈팅이 오른쪽 골대를 맞고 그물로 꽂혔다. 극도의 긴장 끝에 18분 만에 되찾은 안도감. 눈을 마주치기가 겁날 정도였던 시민들은 다시 응원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개막전 이변? 브라질엔 안 통해!”
◇후반 26분, 폭죽과 중국산 나팔의 활약=화려해 보이는 한 술집의 야외 테이블. 테이블들과 거리에 바리케이드가 설치됐다. TV를 좀 더 가까이서 보려면 들어와서 주문을 하고 당당히 보라는 것. 테이블엔 중산층으로 보이는 부부 등 돈 좀 있는 사람들뿐이었다. 반대로 바리케이드 밖은 한눈에도 가난해 보이지만 축구는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 비록 바리케이드로 나뉘어 있어도 후반 26분 네이마르의 역전 페널티킥이 터지자 한 모습으로 환호했다. 바리케이드 밖 사람들은 오스카르의 쐐기골이 터지고 경기가 끝나고 나서도 연방 폭죽을 터뜨렸다. 입으로는 값싼 중국산 나팔을 불었다.
◇종료 휘슬, 폭동 대신 밤샘 축제=경찰들이 우려했던 폭동은 없었다. 한 시민은 “정말 지기라도 했다면 빈말이 아니라 폭동이 일어났을 것”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종료 휘슬과 함께 거리는 시끄러운 음악과 경적으로 메워졌다. 문 닫은 상점 계단에 앉아 승리 기념 입맞춤을 나누는 연인이 있는가 하면 클럽 앞은 순식간에 인산인해가 됐다. 경기장에서 빠져나온 관중도 속속 시내로 이동하면서 상파울루시는 춤과 축배로 하얗게 밤을 지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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