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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태극낭자 유감


박철수 프로필사진


지난 8월3일 월요일 새벽. 지구 반대편에서 전해진 박인비 선수의 브리티시 여자오픈 우승 소식은 열대야의 끈적거림과 불쾌함을 한방에 날려버린 쾌거였다. 대부분 매체들은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앞다퉈 박인비 선수의 브리티시 여자오픈 우승소식을 전하면서 마치 약속이나 한 듯 '태극낭자'를 연호했다.

'낭자'는 예전부터 처녀를 높여 부르던 말이다. 여자 선수들이 나라 밖에서 다른 나라 선수들과 경쟁을 할라치면 '태극'을 그 앞에 놓아 '태극낭자'라 부르고는 한다. 양궁·축구·펜싱 등 국가대항전 경기가 열릴 때마다 그리 불러왔고 우리는 그러려니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 왔다. 브리티시 여자오픈은 국가대항전이 아니니 태극낭자라 부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몽니를 부리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남자 선수들의 경우와 다르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총각을 대접해 일컫는 말은 '도령'이다. 국가대표 남자선수들을 태극낭자와 같은 방식으로 부른다면 '태극도령'이 돼야 마땅하다. 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는 '태극전사'다. 전사는 싸움터에서 상대를 궁지로 몰아 잡아 가두거나 생명을 거둬야 하는 전투병사로 들리기 십상이다. 물론 그리 부르는 이들은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겠지만 행여 전체주의나 잘못된 국가주의 혹은 남성 우월주의를 부추기지나 않을지 염려된다.

이야기를 조금 바꿔 보자. 소위 힘깨나 쓰고 돈깨나 가진 사람들이 범죄 혐의를 받아 검찰에 불려가 밤늦도록 조사를 받는 일이 벌어지면 거의 모은 매체들은 예외 없이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고 전한다. 검찰의 심문이나 조사가 언론에 공개되는 일은 없으니 그저 미뤄 짐작하는 내용을 글이나 말로 전하는 것일 게다. 짐작하건대 그들의 권력과 재물을 경배하는 내 안의 속물주의가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발화됐거나 원래 그런 것이라는 관행을 그대로 전달했을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기회 있을 때마다 반복하는 '특권을 내려놓는다'는 관용구도 그래서 곱씹어볼 말이다. 그들은 왜 버리지 못하고 내려놓을까. 다시 주워 올리려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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