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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74> 고름을 짜내는 용기, 대학에도 필요하다


각 대학마다 3월이면 교수를 채용합니다. 후보자의 논문 수, 특허 보유 여부와 같은 기능적인 성과에서부터 사회성, 인품과 같은 성격적인 요인까지 종합적으로 검토하게 됩니다. 유난히 우리나라 대학 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가 교수 또는 교수 후보자의 인격입니다. 한 분야에 오랫동안 집중하다 보니 사회인으로서 기본적인 소양이나 인격을 검증하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교수 공채는 치열한 경쟁의 과정이기에 한 사람에 대한 악평이 와전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특히 젊은 연구자 또는 전문가가 이른 나이에 출세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동양 문화의 특성상 조직 차원의 저항이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겠죠. 그런데 요즘 들어 각 대학의 단과대학별로 채용을 담당하는 중진 교수들에게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합니다.

A 사립대는 일찍부터 세계 무대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인물을 영입하기 위해 공을 들여 왔습니다. 이 젊은 연주자는 국내외에서도 인지도가 높고 우수 실적으로 정평이 나 있어, 사실상 ‘내정’이나 다름없다고 대학 관계자들은 여겨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의 복잡한 여자관계였습니다. 잠깐 출강하던 대학에서 있었던 제자와의 추문, 결혼을 했음에도 타 대학의 기혼 여교수와 있었던 관계, 반주자와의 반(半) 공개연애 등이 문제가 된 것이죠. 최근 여러 유명인사들의 파문 원인인 모바일 메신저가 이 후보자에게도 ‘일탈의 경로’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인사안을 올리는 2~3월에 단과대학 관계자들은 깊은 고민에 빠질 수 밖에 없게 됐습니다. 훌륭한 인물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뜻밖의 복병을 만난 겁니다. 과거 어느 전직 검찰총장이나 국방장관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그런가 하면 B 사립대에서는 역량 강화를 위해 연구원과 공공기관에서 오래 재직한 인물을 정규 교원으로 선발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과제 수주를 비롯한 외부 재원 조달의 효용성과 해당 후보자의 사회적 입지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해당 후보자의 연구실적이 대부분 불투명한 과정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혼자 단독 저자로 투고했거나 주저자로 쓴 논문은 거의 없고 대부분 과거 과제를 할당했던 대학의 교수나 후배들과 공저로 작성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조차도 ‘살라미 페이퍼’, 즉 서로 매우 비슷한 연구 결과를 두 개로 쪼개 각각 다른 국내 학술지에 투고하는 ‘자기 표절과 중복 게재’의 중간 버전에 해당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학술 전문가로서 고유 역량을 입증할 수 있는 기본조차 되어 있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자들도 우리나라 대학에 많습니다. 최근 들어 연세대, 카이스트, 고려대 등은 ‘양’이 아니라 ‘질’로 교수의 성과를 평가하는 제도를 각 단과대별로 도입하고 있다고 합니다. 거의 국제적으로 특등급 저널에 2개 이상 주저자 또는 공동저자로 게재해야만 부교수, 정교수 승진이 가능한 경우도 많습니다. 똑같은 성과를 내는 미국이나 유럽 대학의 연봉에 비해 훨씬 박한 수준이지만, 3년 재직 기간 동안 10편 이상의 SSCI(사회과학인용지수)급 저널을 내는 교수도 있다고 하니, 열심히 노력하는 학자들도 많은 겁니다. 이런 인물들을 앞서 부도덕한 교수 후보자들과 동급으로 묶는 일은 부당합니다. 그러나 1%의 오염물질이 맑은 물을 마시지 못하게 하듯, 부도덕한 측면은 제도적으로 솎아 내야만 합니다. 게다가 유독 지성인, 즉 화이트 칼라 범죄가 많은 오늘날의 시점에서 대학 사회가 각종 의혹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는 더욱 엄정한 도덕성을 적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요즘 들어 대학 경쟁력에 위기가 닥쳤다고 말합니다. 외부 환경의 빠른 변화 속도, 경제위기, 인구급감, 정부의 연구 지원금 효율화 방침 등이 모두 대학에 위협이 될 거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외부 위기로부터 어려워질 것을 걱정하기 전에, 대학 스스로 안의 고름을 짜내는 용기가 먼저 필요한 것은 아닐까요.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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