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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 필요없어" 미국 IT기업 M&A 자급자족

올 1억弗 빅딜 70% IB 자문없이 진행… 10년새 2.5배↑

IT업계 "장부밖 가치 더 중요, IB 가격협상 도움 안돼"


인수합병(M&A) 시장에서 날로 존재감이 커지는 정보기술(IT) 기업이 투자은행(IB)들에 자문을 구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거래를 성사시키는 사례가 갈수록 늘고 있다. IT 업계를 중심으로 M&A 시장의 풍속도가 바뀌면서 거액의 자문수수료를 챙겨온 IB들의 입지도 좁아지고 있다.

기업전문 칼럼니스트인 펠릭스 새먼은 21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칼럼에서 "최근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M&A 발표에서는 거래를 자문하는 IB들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며 "이는 일련의 과정에 IB가 필요하지 않다는 IT 기업들의 인식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실제 최근 발표된 굵직한 M&A 사례에서는 IB의 자문 없이 거래를 성사시킨 IT 기업들이 눈에 띈다. 페이스북은 가상현실기기 전문기업 오큘러스를 23억달러에 인수하며 자문 금융기관을 지정하지 않았다. 지난해 구글이 지도제작 업체 웨이즈를 인수할 때나 지난 2011년 마이크로소프트(MS)가 85억달러 규모로 스카이프 인수를 성사시켰을 때도 자문 금융사는 없었다.

시장조사 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올 들어 현재까지 규모 1억달러 이상의 미 IT 업계 M&A 사례 가운데 69%는 IB의 자문을 받지 않았다. 27%였던 10년 전과 비교하면 2.5배 이상 급증한 수치다.

전문가들은 매출·순익 등 실적을 토대로 가치를 매기는 IB의 방식이 장부상 드러나지 않는 가치를 중시하는 IT 업계에 먹히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웨일, 고셜앤드멘지스 법률회사의 리처드 클리먼 이사는 "IB의 강점은 기업의 시장가격 산정과 협상인데 IT 기업에 관해서는 이런 능력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많다"고 지적했다.



기술혁신도 한몫하고 있다. 컴퓨터 알고리즘을 인용해 중소 IT 기업들의 M&A를 중개하는 엑시트라운드의 제이컵 멀린스 최고경영자(CEO)는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IB 방식은 디지털 혁명 이후 사양길로 접어들었다"며 "고액의 (자문료) 지출이 필요없는 일종의 M&A 민주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IT 대기업은 월가 IB들이 실리콘밸리의 생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를 들어 아예 자체 M&A전문가팀을 구성하기도 한다. 현재까지 170여개 회사를 사들인 시스코는 JP모건 등 대형 IB 출신 직원들로 내부 M&A 전담부서를 꾸렸으며 페이스북과 구글도 크레디트스위스·제퍼리스 등에서 은행가를 데려왔다.

이처럼 IT 기업들이 월가 IB들의 자문 서비스를 꺼리자 일각에서는 전체 M&A 시장에서 이들의 입지가 축소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새먼 칼럼니스트는 "IT 업계에서는 M&A뿐만 아니라 자금조달에서도 IB가 예전 같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성공을 꿈꾸는 젊은 인재들에게 IB는 더 이상 최고의 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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