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보건복지부 등 정부가 저소득층 지원을 위해 확보해둔 4·4분기 예산 2,300억원이 불용처리됐다.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낮잠을 자는 바람에 예산을 쓸 수 없게 된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은 지난 4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소위에 상정됐지만 이후 법안 처리를 위한 이렇다 할 진전은 없었다. 10일 6개월 만에 다시 법안소위에 상정되기는 했지만 부양의무자 기준을 둘러싼 여야 간 입장차로 결론이 나지 못했다. 현재로서는 오는 17일부터 다시 열리는 법안소위를 기대해야만 하는 형국이다.
이로 인해 복지부의 불용예산 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는 내년 저소득층 지원을 위해 1조1,000억원의 예산을 편성해두고 있다. 지방비까지 합칠 경우 이 예산은 1조4,000억원 정도 규모로 늘어난다. 이 가운데 대다수의 예산(9,100억원)은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에 따라 신규로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을 얻게 되는 저소득층 지원에 쓴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다.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지급 준비에 6개월 정도가 소요된다. 결국 내년도 예산으로 확보해둔 1조1,000억원 가운데 절반은 집행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지방비까지 감안할 경우 법 통과가 한 달 늦춰질 때마다 1,000억원 이상의 돈이 저소득층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되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자 이 같은 불용예산을 무상급식·보육 등에 투입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불용예산을 해당 사업이 아닌 다른 사업에 쓰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국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쉬운 것도 아니다"라며 "하지만 국회에서 마음만 먹으면 하루 이틀 만에도 처리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예산이 불용처리되는 것은 해당 부처에 돈이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 국고에서 예산이 집행되지 않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예산 편성권은 전적으로 국회의 권한"이라고 설명했다.
사정은 교육청도 마찬가지다. 전국 시도교육청의 지난해 불용예산은 1조5,824억원에 달한다. 교육청의 예산집행이 그만큼 효율적이지 못하는 방증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시도교육청이 무상급식·보육 등에 투입할 예산이 없다며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데 교육청의 불용예산을 따져볼 때 교육청의 이 같은 움직임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교육청의 한 관계자는 "위기시에 대응할 수 있으려면 최소한의 불용예산은 필요하다"면서도 "교육감도 선출직이다 보니 핵심 사업에 예산을 우선적으로 배정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예산안을 짤 때 불용예산이 최대한 생기지 않도록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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