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경제의 또 다른 화약고 그리스의 운명을 가늠할 총선이 25일(현지시간) 실시됐다. 급진 좌파연합 시리자의 승리가 유력한 가운데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로 일컬어지는 알렉시스 치프라스(40) 시리자 당수의 행보가 주목되고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우려하고 있는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Grexit)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유럽연합(EU),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 등 이른바 '트로이카' 채권단과의 재협상 등 각종 리스크가 산재해 있어 그리스발(發) 시장 불안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게 외신들의 분석이다.
이날 오전7시~오후7시(한국시각 오후2시~26일 오전2시)까지 진행된 그리스 총선과 관련, 글로벌 투자 컨설팅 업체 AVG는 최근 고객들에 보낸 보고서를 통해 "시리자의 승리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며 "의회 내 단독 과반을 차지할 수 있을지가 더 관심"이라고 분석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보도했다. 실제 글로벌 여론조사 수집 사이트인 '메타폴스'에 따르면 최근 18~23일 여론조사에서 시리자는 평균 35.7%의 득표율을 기록, 현 집권여당인 신민주당(29.9%)을 여유 있게 제쳤다.
현 그리스 제1야당인 시리자는 2,400억유로(약 292조6,368억원) 상당의 구제금융을 제공하고 있는 트로이카 채권단의 긴축 프로그램을 폐기하고 집권시 채무의 최대 50%를 탕감 받는 재협상을 추진할 것이라고 공약해왔다.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유로존 탈퇴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총선 결과로 '시리자 승리→긴축정책 폐지 및 채무탕감 주장→채권단과의 대립→그렉시트→글로벌 금융시장 대혼란'으로 이어지는 최악의 시나리오 그 첫 장이 현실화됐다. 그러나 시리자가 자신들의 뜻대로 정책을 펼칠 수 있는 단독정부를 구성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연립정부 구성이 불가피하며 누구를 연정 파트너로 삼느냐에 따라 치프라스 당수의 행보는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시리자가 손잡을 가능성이 높은 군소정당은 '강(江)'이라는 뜻의 포타미와 그리스독립당 등이다. 그러나 포타미는 시리자의 긴축 폐기 정책에 반대하고 있고 그리스독립당은 3% 득표 여부가 불투명해 두 정당 모두 최적의 연정 파트너라 하기에는 어려운 구석이 많다. 비즈니스위크는 "치프라스가 포타미와 손을 잡는다는 건 채권단과의 대결을 피하고 싶다는 신호가 될 수 있고 (반대로) 그리스독립당을 택하게 된다면 (대결의) 무대 위로 오를 준비가 됐다는 의미가 된다"고 내다봤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치프라스 총리 체제가 들어선 뒤) 시리자 정부가 긴축 철회 및 세금 감면, 사회적 자본 지출 증대 등 지금껏 내놓은 공약을 현실화하겠다고 나설 경우 그리스의 구제금융 프로그램은 급격한 탈선의 길로 접어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만 치프라스 당수가 선거 후반 들어 "그렉시트는 없다"는 점을 수차례 강조하고 있고 그리스 국민은 물론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국가들도 그렉시트를 가급적 피하려 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장이 우려하는 최악의 리스크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다만 시리자가 다음달 28일 만료되는 그리스 구제금융 프로그램의 긴축을 철회하고 채무 재탕감을 위한 재협상을 주장하고 나설 것은 확실하다. 이 과정에서 트로이카 및 유로존 긴축의 선봉장 독일 등과의 충돌이 불가피하고 이에 따라 글로벌 금융시장이 당분간 높은 변동성을 보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비즈니스위크는 "그리스 재정 상태는 매우 취약하고 은행 예금도 빠져나가고 있는데다 외환보유액도 적어 그리스 정부는 (구제금융이 없으면) 오는 6월이면 돈이 바닥날 것"이라며 "재협상 과정에서 채권단이 우세한 입장을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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