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ㆍ달러 환율이 4년여 만에 100엔대에 진입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 기업들의 역습이 시작되고 있다. 엔화 약세가 수출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며 기업들이 쾌재를 부르고 있고 경상수지도 개선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10일 일본 재무성은 3월 경상수지 흑자가 1조2,500억엔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4.3% 감소한 것이지만 전문가들의 전망치인 1조2,000억엔을 넘어섰으며 월간 흑자 규모로는 1년 내에 최대치다. 2월의 6,374억엔 흑자에 비해서도 2배가 늘었다.
엔화 약세로 일본 기업들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수익이 크게 늘고 있는 것이다. 비틀거리던 일본 전자업계의 공룡인 소니의 경우 엔화 약세 효과로 5년 만에 첫 흑자를 냈다. 소니는 2011 회계연도(2011년 4월~2012년 3월)에 4,500억엔 손실을 기록했지만 2012 회계연도에 430억엔의 순익을 기록했다.
엔저 현상이 두드러졌던 올해 1~3월에 순익 939억엔을 기록하면서 흑자전환의 일등공신 역할을 해냈다. 소니는 2013회계연도에도 순익 500억엔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가토 마사루 소니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달러당 엔 기준 환율을 90엔대로 잡고 있다"면서 "엔저로 영업이익에서 600억엔 이상의 상승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도요타자동차도 엔저 효과에 힘입어 2012회계연도에 전년 대비 3.7배 규모인 1조3,208억엔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5년 만에 금융위기 이전 수준인 1조엔대 이익을 회복한 것으로 2013 회계연도에는 영업이익이 2012년도보다 36.3% 늘어난 1조8,000억엔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일본 기업들은 엔저 효과가 연간 실적에 온전히 반영되는 올해에는 더 큰 폭의 이익 개선을 기대하고 있다. 실제 일본 다이와증권은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100엔일 경우 일본 200대 기업의 2013 회계연도(2013년 4월∼2014년 3월) 세전이익이 전년도 대비 75% 성장한 16조900억엔(175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엔화 약세로 국내 생산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강화되자 해외 공장 이전 계획도 수정하고 있다. 닛산은 엔고에 대비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생산 라인을 미국으로 전면 이관하려던 계획을 연기하고 국내에서의 생산량을 연간 100만대 이상 수준으로 유지하기로 했다. 후지제록스ㆍ에프디케이(FDK) 등도 중국공장 생산량을 줄이고 일본 생산량을 늘릴 계획이다.
이 때문에 일본 제조업체들이 해외 생산시설의 일본 'U턴'을 본격화하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일본 자민당 일본경제재생본부는 U턴 기업을 대상으로 세금혜택을 제공하는 방안을 정부에 제출했다. 해외 공장을 폐쇄하고 국내 공장을 신설하려는 기업에 대해 일정 기간 법인세를 깎아주고 국내 복귀를 전제로 한 제조업체의 해외공장 철수 비용에 대해 세금 혜택을 제공하기로 했다.
다만 이처럼 엔저로 일본 경제가 주가 상승, 실적 호조 등 단기적인 효과는 보고 있지만 투자 확대, 고용 창출 등을 통해 경기침체에서 탈출하고 근본적인 체질을 개선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실제 일본기업의 올해 설비투자 계획은 여전히 마이너스 상태이고 임금인상률은 1.8%로 전년 동기 대비 0.03% 하락하는 등 여전히 봄바람이 불지 않고 있다. 마이클 카세이 마켓워치 칼럼니스트는 "자동차ㆍ닌텐도ㆍ애니메이션을 빼고 현재 일본의 최대 수출품은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이라고 비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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