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재상입니다."
서울 여의도 증권가의 유명인사 중 한명인 그가 내미는 명함이 낯설다. 'K클라비스투자자문 대표이사'라고 큼지막하게 박혀 있다. 미래에셋금융그룹의 펀드 신화를 창조한 주역이던 그가 지난해 11월 부회장직을 사임한다고 했을 때 여의도는 술렁였다. "잠시 머리를 식히고 싶다"던 그가 지난 6월 여의도로 돌아왔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투자자문사와 함께.
"대학 졸업하고 24년가량 일하면서 처음으로 6개월 정도 쉬어본 것 같네요." 그의 목소리에서 즐거움이 느껴졌다. 쉬는 동안 시도 배우고 미술수업도 듣고 클래식 공부도 했다고 한다. 그는 "모든 걸 내려놓고 여러 가지를 배웠더니 행복이라는 게 보였다"고 말했다. 유럽 여행을 다니면서 재충전도 확실히 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몰랐는데 휴식이 중요하더라. 제가 사장이 됐으니 직원들에게 휴가는 꼭 보장해주려고 한다"며 웃었다.
구재상(49ㆍ사진) 대표가 새로 차린 K클라비스투자자문은 자본금 40억원, 직원이 15명에 불과하다. K클라비스는 한국을 의미하는 '코리아(K)'와 라틴어로 열쇠를 뜻하는 '클라비스'를 조합한 것이다. 투자자에게 새로운 문을 열어주겠다는 의미로 임웅균 한국예술종합대 교수가 지어준 이름이다. 구 대표가 첫번째로 내놓은 상품은 자문형랩. 출시 나흘 만에 500억원의 자금이 들어왔다. 역시 '구재상'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현재 유입된 자금은 2,000억원가량 된다. 수익률은 9.5%로 양호하다. 그는 "올해까지 5,000억원의 자금을 모으고 장기적으로 2조~3조원의 자금을 운용한 뒤 자산운용사로 전환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미스터 펀드'라 불리는 구 대표의 투자 신화는 어떻게 시작 됐을까.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동원증권에 입사했다. 입사한 지 9년 만에 지점장으로 승진했다. 그의 나이는 겨우 32세. 그것도 가장 많은 자금이 모여 중요한 곳으로 평가 받는 압구정지점의 지점장이었다. 그는 "어려운 시장에서도 양호한 수익률을 기록하며 고객들의 약정관리를 잘한 덕분인 것 같다"며 "어린 나이에 지점장이 된 게 부담스러운 상황이었지만 무난하게 지나갔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매도에 일가견이 있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과도하게 집중된 종목을 파는 방식으로 매도 시점을 잘 잡았던 것이다.
그는 1997년 잘나가던 압구정지점장직을 내던지고 도전을 펼쳤다. 박현주 당시 동원증권 중앙지점장, 최현만 동원증권 서초지점장과 손을 잡고 미래에셋캐피탈을 차린 것. 그는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으로 인해 코스피지수가 290포인트대까지 떨어졌는데 국내 증시가 너무 떨어져 희망이 크다고 생각했다"며 "기업의 본질적 가치를 보고 투자한 것이 좋은 성과로 이어져 회사가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후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운용책임자로 14년 동안 투자를 책임졌다. 디스커버리ㆍ인디펜던스 등 미래에셋 펀드 신화의 성공을 이끌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전성기 시절 국내 주식시장에서 움직이는 자금이 48조원에 달했다. 국민연금보다 운용 규모가 더 컸다. 어지간한 대형 종목의 2대주주 자리를 꿰찼다. 그의 별명이 '미스터 펀드'가 된 것도 이 덕분이다.
수십조원의 자금을 주무르는 그의 투자 노하우는 간단하다. 균형 있는 시각을 갖는 것이다. 그는 "낙관적 전망이 지나치면 과열로 판단하고 비관적 시각이 커지면 투자 기회로 여긴다"고 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를 떠올려보자. 그는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앞두고 미국에서조차 낙관론이 지나쳤는데 당시 미래에셋자산운용 매니저들을 설득해 포트폴리오의 절반 정도를 바꿨다"며 "현대중공업의 주가가 100만원 갈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 정도여서 당시 시장이 과열된 상태라고 판단했고 그 덕분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쇼크를 잘 대처해나갈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2000년대 초반에는 NHN 등 성장성이 좋은 기업에 투자했다. 당시 4만원가량 됐던 NHN의 주가는 13만원대까지 상승하며 높은 수익률을 안겼다.
그는 외국인의 시각에서 국내 주식시장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코스피지수가 1,800포인트대에서 움직이는데 이런 시장에서는 투자하기가 좋다"며 "외국인들 입장에서 한국 기업들의 가치와 성장성을 고려하면 현재 지수는 분명히 상승여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또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로 아시아 국가들이 금융위기를 겪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는데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며 "한국은 다른 이머징 국가들에 비해 외환보유액이 많고 제조업 기반의 경제구조여서 미국의 경기회복이 오히려 외국인의 '바이 코리아'를 이끌 것"이라고 언급했다.
40조원이 넘는 자금을 움직였던 덕에 그는 항상 1년 이상의 미래를 내다보며 움직인다. 그는 "워낙 큰 자금을 움직여야 했기에 주식을 팔 때는 1년에서 1년 반 정도 미리 생각해야 했다"며 "멀리 보는 시각으로 투자하면 위기를 잘 버틸 수 있다"고 소개했다.
현재 시점이라면 삼성전자ㆍ현대자동차 등 대형주와 성장성이 좋은 기업들이 좋은 투자 대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삼성전자는 예전 같으면 쳐다보지도 않았을 텐데 현재 가격이 너무 떨어져 상당히 매력이 있다"며 "중국 증시가 계속 부진한데도 인터넷기업 '텐센트'의 주가가 40% 넘게 오르는 걸 고려하면 국내 증시 역시 신성장업종의 종목들은 증시흐름과 관계없이 투자매력이 있어 눈여겨본다"고 귀띔했다.
투자 아이디어는 주로 어디서 얻을까. 일상생활에서 겪는 사건과 마주치는 사람들이 모두 투자에 도움을 주는 핵심 아이디어라고 한다. 그는 "몇 달 전부터 조선주를 매입했는데 투자 아이디어는 간단했다"며 "조선업에 일하는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배를 주문하는 오더(주문량)가 늘고 있다고 하길래 체크해보니 조선업황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어 투자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요즘 매일 오전5시에 일어나 새벽운동을 한 뒤 7시께 출근한다. 퇴근은 오후10시 이후이다. 주말에도 예외 없는 생활이다. 회사를 새로 시작해 업무가 많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성실한 생활태도를 갖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에서다. 밑바닥에서 다시 도전을 시작한 그의 목표는 뭘까.
"한국에서 의미 있는 투자회사를 꼭 만들고 싶습니다. 운용자금 규모에 욕심을 내지 않고 수익률로 증명해 보이고 싶어요."
구재상 대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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