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이 존경하는 최고의 지도자
참전 앞두고 달콤한 승리의 말 대신 땀·눈물 필요하다며 현실 직시 당부
한국 '꼼수 증세' 논란에 허송세월
현실적 한계 털어놓고 머리 맞대는 진정한 리더의 면모 보여줄 때
얼마 전 교육부가 흥미로운 영어교육 대책을 하나 내놓았다. 학생들의 실용영어 실력을 높이기 위해 명연설로 유명한 윈스턴 처칠이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문을 교실에서 직접 가르치겠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처칠의 연설문에서는 전쟁의 와중에도 국민들에게 용기를 불어넣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준 언어의 힘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요즘 영국에서는 처칠 서거 50주년을 맞아 그의 리더십을 되돌아보는 다양한 행사가 열리고 있다. 처칠의 국장 50주년인 오는 30일에는 런던 템스 강을 따라 운구 행렬이 이어지던 세기의 장례식이 재현되며 의사당에서 열리는 추도식은 생중계될 예정이다. 영국인들이 이처럼 거창하게 50주년을 기념하는 것은 처칠을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나라를 이끈 최고의 지도자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유머감각까지 뛰어났던 그의 리더십에 대한 존경심은 지금도 영국인들의 마음속 깊숙이 새겨져 있다. 그가 참전을 앞두고 "국민 여러분에게 바라는 것은 피와 땀과 눈물"이라고 했던 유명한 호소는 전쟁을 수행할 최고 책임자로 행한 첫 연설이자 국민들과의 담대한 약속이었다. 그는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국민들에게 달콤한 승리의 말을 속삭이지 않고 피와 땀과 눈물이 기다리고 있는 참혹한 현실을 직시하라고 당부했다.
최근 의회에서 2015년 연두교서를 전했던 오바마의 연설도 감동적인 뒷이야기를 남기고 있다. 그는 연설 초반부에 "오랜 경제위기를 거쳐 현재 미국 경제가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면서 "우리는 지구상의 어느 나라보다 자유롭게 경기침체에서 일어나 우리의 미래를 쓰고 있다"고 선언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 마무리에 레베카라는 시민이 자신에게 보내온 편지를 인용하면서 "새 세기로 들어선지 15년, 우리는 미국 재건의 과업을 다시 시작했고 새로운 토대를 놓았다. 지금보다 더 밝은 미래는 우리가 쓸 우리의 역사이다. 우리 함께 이 새로운 역사의 장을 시작하자"고 선언했다.
오바마의 강력한 자신감은 바로 경기 회복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국 증시는 유례없는 활황 국면을 이어가고 있으며 창업 열기 속에 나 홀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월스트리저널은 미국의 경제자유지수가 정부지출 억제에 힘입어 7년간의 하락세를 멈추고 마침내 상승세로 돌아섰다고 전했다. 하나같이 부럽기만 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눈을 돌려 한국 경제를 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지난해 우리 증시는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유가 하락의 직격탄을 맞은 러시아를 제외하면 꼴등에 머물렀다. 제조업 육성 및 친시장 정책을 골자로 한 '모디노믹스'를 앞세운 인도는 상승률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구조개혁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감이 강하게 반영된 것이다. 반면 우리 경제는 갈 길을 잃은 채 미로 속을 헤매는 듯하다. 대통령은 4대 구조개혁을 외치지만 국민들에게는 공허하기만 하다. 이른바 집권 3년 차 증후군이 드러나고 있다는 얘기도 많다. 관가에서는 지지율 하락에 허우적대는 대통령을 보며 속으로 웃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대통령이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공직사회 개혁이 쉽게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정책 당국자들이 저지르는 이런저런 헛발질을 보노라면 일부러 어깃장을 놓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심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대한민국은 지금 '꼼수 증세' 논란에 파묻혀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갈 길 잃은 증세와 복지 문제에만 파묻혀 마냥 허송세월할 때가 아니다. 진정한 지도자는 국민들에게 현실의 어려움을 솔직히 털어놓고 다 같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다시 뛰어보자고 말해야 한다. 국민들은 이미 용기 있는 지도자의 손을 맞잡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더 이상 우리에게는 주저할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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