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에서 이슬람 시아파와 수니파 간 '보복의 악순환'이 곳곳에서 목격되는 등 종파 내전이 현실화되고 있다. 지난 2006년부터 3년간 수만명의 이라크인을 죽음으로 내몬 살육전의 비극이 6년 만에 재연될 위기에 놓인 것이다.
17일(현지시간) 인터내셔널뉴욕타임스(INYT)에 따르면 전날 밤 이라크 디얄라주의 주도 바쿠바의 한 경찰서에 수감돼 있던 44명의 수니파 죄수가 총살당했다. 지난주 봉기를 일으킨 급진 이슬람 수니파 무장세력 '이라크·레반트이슬람국가(ISIL)' 반군과 이라크 정부군, 시아파 민병대 간 교전이 벌어져 반군이 제압됐고 이 과정에서 시아파 민병대가 수니파 수감자를 처형했다고 현지 경찰이 밝혔다.
이와 반대로 이날 저녁에는 시아파 집단거주 지역인 사드르시(市)의 한 시장에서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해 최소 14명이 숨졌다. 이에 앞서 바그다드 북부 사마라 지역에서는 정부군 18명의 시신이 발견됐다. 극단 수니파가 시아파 지역을 겨냥해 테러를 감행하고 시아파 군대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수니파 인사들을 고문·처형하던 2006년의 이라크 내전 당시와 유사한 일들이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ISIL은 폭탄 테러와 암살 건수 등을 기록한 테러 '연례보고서'를 작성하는 잔인성을 보이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INYT는 "이라크에서 2006년 처음 발생해 이후 3년간 종파 내전으로 확대됐던 폭력의 사이클이 이번에도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다"며 "(당시와 달리) 현재는 미군이 이라크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태가 더 악화될 소지가 높다"고 우려했다.
이 같은 종파 내전 양상은 ISIL 반군이 수도 바그다드의 턱밑까지 진격해오면서 더욱 극심해지는 모습이다. 현재 반군은 바그다드 동북쪽 60㎞까지 점령 지역을 넓혔고 수도 점령을 막으려는 정부군 및 시아파 민병대와 ISIL 간 교전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신의 선물'이라는 뜻을 지닌 바그다드가 "폭탄 공격과 분파 간 살인으로 얼룩진 '게토(격리 지역) 도시'로 전락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보도했다. 바그다드 유엔본부에서 근무하는 시난 알 둘라이미씨는 블룸버그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돈을 인출하려고 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거리에서 인적을 찾기 힘들다"며 "식료품 사재기도 극심해 보통 10달러가량하던 쌀 10㎏이 25달러 이상까지 치솟았다"고 전했다.
현재의 이라크 사태가 중동 전역의 종파 전쟁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감도 여전히 높다. 시아파의 맹주 격인 이란과 시리아 정부는 이라크 정부군을 직간접 지원하면서 사태 개입을 확대하고 있는 반면 수니파의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수니파 반군을 재정적으로 돕고 있다고 누리 알말리키 이라크 총리가 주장했다.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과거에 있었던 종교 전쟁의 유령이 현재 이라크를 배회하고 있다"며 "종교적 분노와 대량 살육전은 한번 발생하면 근절하기 매우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 유럽의 종교 전쟁을 통해 잘 알고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과 유엔 등 국제사회는 이번 사태 해결을 위해 수니파와 시아파·쿠르드족을 아우르는 통합정부 구성을 이라크 정부에 요구하고 있지만 알말리키 총리는 거부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알말리키 총리와 수니파 정계 대표 오사마 알누자이피 이라크 국회의장은 17일 비공개 회담을 갖고 이라크의 통합을 호소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한편 ISIL의 진군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미국의 이라크 공습 가능성에 대해 한 미국 당국자는 "반란을 제압하는 데 적절한 타깃이 아직 분명하지 않다는 이유 등으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당장은 이를 승인하지 않을 것"이라며 "공습은 현재 미 행정부의 주요한 관심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AP통신이 18일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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