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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금융의 뿌리' 화폐, 그 시작을 엿보다

■ 돈의 발명 (알레산드로 마르초 마뇨 지음·책세상 펴냄)

사진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금화인 베네치아 ''두카토''와 피렌체 ''피오리노, 오른쪽 사진은 베네치아의 은행가들이 모여있던 15세기 리알토 다리 인근 풍경, 아래 사진은 15세기 네덜란드 브루게의 증권거래소 모습, 브루게는 네덜란드에 있던 이탈리아의 금융 지점 같은 도시였다. 왼쪽 사진은 중세시대 각종 화폐 사이의 환전을 담당했던 은행가의 모습으로, 옆에 있는 것은 그의 아내다.


14~16세기 이탈리아서 태동… 귀족들 사치품 공급 수단으로 써
동전 이어 금·은화 등 거래 활발
은행·보험회사 탄생 배경 추적
이자·인플레이션·주가조작 등 금융 메커니즘 작동 생생히 그려


현대 경제생활에서 화폐와 은행은 낯익은 물건으로, 누구도 그 존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의 역사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화폐와 은행이 생겨난 것은 불과 수백년 전,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에서의 일이다. 경제학자들이 흔히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화폐나 은행도 순전히 시장거래의 합리성에서 생겨난 것은 아니다. 화폐의 이면에는 상업, 공동체, 국가권력, 지정학 등의 복잡한 사연이 숨어있다.

근대적인 화폐와 은행,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하는 금융이 생겨난 것은 14~16세기 이탈리아라고 평가된다. 북부 이탈리아의 역삼각 지역인 제노바-베네치아-피렌체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에서 처음 태동을 보인다.

'돈의 발명:유럽의 금고 이탈리아, 금융의 역사를 쓰다'는 이 시기 번성했던 이탈리아 도시국가를 무대로 은행·다국적기업·보험회사가 처음 만들어지고 이자·환전·인플레이션·주가조작 같은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모습을 추적한다. 이 책이 재현해낸 태동기 금융의 역사는 '돈'을 중심에 둔 경제의 역사이자, 그 배후에서 각축하는 정치적 사회적 권력의 투쟁기이기도 하다.

유럽사에서 화폐, 은행과 금융은 시대적 산물이다. 물론 화폐는 고대 로마시대부터 사용됐다. 물물교환의 단계를 지나 상업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화폐가 필요했다.

이민족의 대이동과 뒤이은 중세에 접어들면서 화폐는 잠시 종적을 감춘다. 다른 지역과 국가간에 거래가 끊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역 내부적으로는 성직자와 귀족, 평민으로 나뉜 상태에서 특별히 돈을 쓸만한 일이 없었다. 필요한 것은 물물교환이나 노력봉사로 가능했다.

생산력의 발달과 함께 기존 사회가 삐걱거린다. 먹고 마시는 기본적인 생필품 외에 더 많은 물건이 필요해졌고 성직자와 귀족 등 지배계급들은 사치해졌다. 이러한 틈을 비집고 상인이 출현했다. 자급자족을 포기한 농부에게 옷을 공급하고 수공업자에 양식을 공급하고 귀족들에는 사치품을 공급하는 거래인이 생겨난 것이다.

이들이 등장하자 기억에서 잊힌 물건, 바로 화폐가 요구됐다. 동전에 뒤이어 은화가 나왔고, 순도 95% 이상의 금화도 주조됐다. 화폐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은행이 등장한다. 일부 상인이 재빠르게 화폐를 모아 은행가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은행가는 탁자 위에 천을 깔고 돈 자루를 올려둔 모습으로 표현됐다. 탁자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방코(banco)'에서 은행을 뜻하는 용어 '방카(banca)'가 파생됐고 그 업무를 수행하는 자는 '방키에레(banchiere)'라고 불렀다. 은행가는 처음에는 환전업무를 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금고를 이용해 예금과 대출을 해주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의 도시국가에서 금융이 발전한 데는 로마 교황청의 역할이 컸다. 교황청은 모든 기독교 국가에서 십일조 등 세금을 거두어들였는데 각지에서 수많은 물건과 갖가지 종류의 화폐가 모여들었다. 성직자들이 이를 직접 다루기는 힘든 상황에서 결국 은행가들을 고용하게 된다. 이런 은행가들은 피렌체 등 중북부 이탈리아의 도시국가에서 주로 배출됐고 이 지역의 금융이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

다른 한편으로 교황청과 수도사들은 교리를 엄격히 해석해 돈을 빌려줄 때 이자를 받은 행위를 '착취'라고 보고 금지했고 이에 따라 이자이면서 이자처럼 보이지 않는 형태의 금융거래가 발전했다.

이탈리아의 초기 은행들은 주로 가족 구성원들이 직접 운영하는 가족회사로 시작했다. 14세기에는 피렌체의 바르디 가문과 페루치 가문의 은행이 주도적으로 활동했고 15세기에는 메디치 가문이 오늘날의 지주회사 초기 형태를 띤 은행을 설립해 교황청의 자금을 운용하거나 국제무역과 다국간의 환전과 송금 업무등을 수행한다.

다만 은행도 사기업인 만큼 파산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자본주의 초기 금융시스템이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설립되는 은행이 많은 만큼 문을 닫는 곳도 많았다. 흑사병, 선박의 난파, 전쟁 등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개인은행의 파산이 늘어나면서 서서히 공공은행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저자는 당대 문인의 작품과 역사가들의 연대기, 대를 이어 전해진 상인들의 회계 장부, 재판소 범죄 기록까지 곳곳을 누비며 금융 역사의 이야기를 생동감 있게 풀어냈다. 중세 이탈리아의 광장과 좁은 골목에서 이러한 금융의 모든 장치, 즉 화폐와 은행, 보험과 증권, 담보와 이자, 교환과 복식부기, 저축과 투자, 수표와 채권이 탄생했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진다. 2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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