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시장의 트렌드가 바뀌면 보증의 역할 역시 변화해야 합니다. 재무건전성을 유지하면서 바뀐 시장상황에 맞는 공적 역할을 꾸준히 발굴해나갈 것입니다."
최근 건설∙부동산 시장의 공공분야에서 두드러진 현상은 민간기업 출신 최고경영자(CEO)의 잇따른 발탁이다. 김선규(60∙사진) 대한주택보증 사장 역시 민간기업 출신의 CEO 중 한 명이다. 국내 건설업계의 맏형인 현대건설에서 30여년간 잔뼈가 굵은 김 사장은 지난 1월 취임 후 공기업인 대한주택보증에 민간의 효율∙창의성을 결합시키며 조직에 신선한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김 사장은 "민간기업에 오랜 기간 몸담았지만 개인적으로는 현대건설을 사기업이 아닌 '국민기업'이라고 생각해왔다"며 "이 때문에 공기업 경영이 결코 이질적이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는 "막상 대주보를 맡아 보니 공기업 시스템이 생각보다 투명하더라"며 "이를 민간이 가진 효율성과 신속성을 결합하면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이 때문일까. 김 사장의 머리에는 지금까지 대주보에서는 없었던 다양한 상품 아이디어로 가득 차 있는 듯했다. 또 이 중 상당수 상품은 이미 출시됐거나 구체화 작업을 거쳐 출시를 준비 중이다.
"지난 반년간 대주보의 모토를 서민주거 안정지원으로 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신규상품 개발에 주력했습니다. 주택 구입자금과 전세자금 조달을 지원하는 신상품의 경우 출시된 지 반년 만에 보증실적이 4조원을 넘어섰습니다."
특히 이 같은 성과는 주택 경기침체로 내로라하던 중견 건설사들이 잇따라 경영난으로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를 겪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실제로 풍림산업∙우림건설∙삼환기업 등이 잇따라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김 사장은 대주보에 가장 중요한 것은 '공적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재무건전성은 이 같은 공적 기능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한 기반일 뿐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주택사업자의 어려움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해 1조원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보증을 지원했습니다. 올해는 목표액을 지난해의 두 배 규모인 2조원으로 높였습니다."
이를 위해 보증 대상 시공사 요건을 시공능력 순위 300위에서 400위까지 대폭 확대해 중소 건설업체에 대한 보증지원이 가능하도록 했다. 또 대상 사업장의 연면적 기준도 3만㎡ 이상(수도권 기준)에서 2만㎡ 이상으로 대폭 완화했다.
올 6월에는 대주보의 보증을 통해 건설사들이 자본시장에서 주택 건설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PF대출 유동화 보증'도 출시했다.
김 사장은 "유동화증권 발행으로 업계가 건설자금의 공급원을 다양화하고 조달비용을 낮출 수 있어 국내 PF보증시장의 구조를 개선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노력은 최근 기업신용평가에서 대주보가 최고 등급인 AAA를 획득하는 결실을 맺기도 했다. 주택 분양보증을 바탕으로 탄탄한 사업기반을 확보하고 있는데다 풍부한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점 등이 다방면에서 고른 점수를 획득한 것.
김 사장은 "높은 신용도는 유럽 재정위기 여파로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국내 주택 경기침체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공적 보증기관의 지위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자평했다.
대주보는 이번 신용평가 등급을 통해 조달금리가 더 낮은 유동화 증권을 발행하게 돼 주택 건설자금의 공급원 역할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주보의 건설사 지원 방안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건설회사 유동성 지원방안의 일환으로 최근 환매조건부 미분양주택매입사업과 채권담보부증권(P-CBO) 후순위채 매입사업도 담당해 양호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사장은 "환매조건부 미분양주택매입의 경우 2008년 이후 올 상반기까지 총 96개 사업장 1만7,646가구를 매입해 약 2조8,836억원의 유동성을 시장에 공급했다"며 "P-CBO 후순위채 매입은 현재까지 331억원을 매입했고 연말까지 350억원을 추가로 매입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김 사장은 건설업체의 파산으로 분양보증 사고가 발생한 환급사업장 처리방안에 대해서도 기존과 다른 아이디어를 구상 중이다. 보통 환급사업장은 공매에서 수십 차례 유찰돼 공기업이 회수해야 할 채권가격만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59개 환급사업장 중 53개 사업장을 매각해 약 1조4,000억원을 회수했다"며 "대부분의 사업장이 매각 완료됐지만 일부 우량 사업장은 직접 공사를 마무리한 후 매각하거나 임대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다각적인 노력에 힘입어 올해 상반기에만 약 3,000억원의 채권을 회수했다는 설명이다. 대주보는 또 장기간 공사가 중단된 환급사업장의 슬럼화 방지를 위해 사업장 관리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다.
대주보가 현재와 같이 다양한 방면에서 서민주거 안정화와 건설사 지원이라는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김 사장이 민간 건설업체에서 30년 이상 근무한 경험과 지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이 같은 성과는 1977년부터 2010년까지 30년이 넘는 세월을 현대건설에서 근무하면서 '근면'과 '성실'로 대표되는 '현대DNA'가 그의 뼛속까지 녹아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김 사장은 국내에서 어느 누구보다 주택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이 날카롭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주택시장은 분명히 변하고 있으며 공공기관과 민간업체 모두 이 변화에 적응해나가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주택의 개념이 소유에서 거주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고 가구 구성도 4인 가구에서 1~2인 가구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는 트렌드를 읽고 새로운 변화를 충족시키기 위해 회사의 정책방향을 획기적으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김 사장은 "최근 대주보도 단순한 분양보증에서 벗어나 임대 등 시장여건 변화에 맞는 새로운 역할을 고민 중"이라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것이 주거용 오피스텔 공급 확대를 위한 '오피스텔분양보증'과 임차자금을 안전하게 보호함으로써 거래활성화에 기여하는 '전세보증금보증'이다.
이를 위해 대주보는 근거법령 개정을 위해 구체적인 방안을 주무부처인 국토해양부와 협의 중이다.
이와 함께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임대주택시장 활성화 정책 지원을 위해 민간 임대주택 건립과 관련된 새로운 보증상품 개발도 구상 중이다.
현재의 시장상황과 양도소득세 감면,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 등 최근 정부 대책에 대한 그의 평가가 궁금했다.
김 사장은 "그동안 인정받지 못했던 장래 기대소득이나 은퇴자 보유의 부동산 처분이익 등 실현성 있는 소득 일부를 인정하기 위한 DTI 규제 완화는 필요한 조치"라고 전제한 뒤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지금의 부동산 경기침체는 DTI 규제도 한몫했지만 유럽 재정위기의 영향이나 베이비붐세대 은퇴에 따른 주택거래 수요감소 등 시장 자체의 불확실성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유럽발 재정위기나 국내 경기침체 등 소비자의 구매여력이 뒤따르지 않는 상황에서 침체된 부동산 경기의 활성화는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경제 전반의 역학 관계를 고려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의 그의 생각이다.
김 사장은 주택 보급률이 100%를 넘어서고 있는 만큼 주택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감안한 주택정책의 획기적인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그는 "노령화 및 1~2인 가구 증가에 따른 소형 임대주택의 수요증가, 비혈연 가구의 증가 등 다양한 수요에 따른 소형 임대주택 공급 촉진정책이 요구된다"며 "주택에 대한 잠재수요를 실제 매매로 연결하는 수요진작책으로 취득세∙양도세의 한시적 완화 등 세제지원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사장은 최근 대주보의 사회공헌 활동폭도 넓혀가고 있다. 사회공헌은 민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의 그의 지론이다.
"소외계층의 주거복지 향상을 위한 사회공헌 사업과 임직원 봉사활동을 적극적으로 확대해나갈 계획입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서민과 취약계층 주거안정을 위해 대주보의 공적 역할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확대해나가는 것이죠."
전국 돌며 건설현장 목소리 챙기고 매주 직원들과 난상토론 박홍용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