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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산책] 국악, 다스림에서 힐링으로


선인들이 거문고를 연주하거나 거문고와 함께 있는 모습은 옛 그림에 자주 등장한다. 옛 선비들은 자신의 몸을 바로잡고 마음을 다스려 깨끗이 하기 위한 수양의 도구로 거문고를 활용했다. 음악 자체의 기교나 아름다움보다는 마음을 다스리거나 학문에 열중하면서 긴장했던 몸의 상태를 이완시키는 등 음악을 또 하나의 공부 시간으로 활용한 것이다.

우면산 아래 연희풍류극장 개관

1620년에 이득윤이 지은 거문고 악보 '현금동문류기(玄琴東文類記)'에는 역대 이름난 현인들의 거문고에 대한 기록과 함께 거문고를 연주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알고 하지 말아야 할 다섯 가지 경우를 뜻하는 말로 '오불탄(五不彈)'이 등장한다. '오불탄'은 바람이 세차게 불거나 비가 사납게 내릴 때, 교양 없는 속된 사람을 마주 대할 때, 의관을 갖추지 못했을 때, 시장(저잣거리)에 있을 때, 앉을 자리가 적당하지 못할 때 연주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음악을 마주함에 있어 주변상황과 환경에 따라서 접근하는 마음가짐이 달랐던 것이다. 음악이 단순한 음들의 조합이 아니라 세상과 조화로움을 이루고 나아가 개인의 몸과 마음에도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생각들이 추상적이고 관념적으로 치부될 수도 있으나 이면을 들춰보면 과학적 인식이 숨어 있다.

음은 공기 중에 파동으로 사람의 귀에 전달된다. 청각기관을 통해 전달된 파동은 뇌를 자극해 자극 형태에 따라 각기 다른 호르몬을 생성한다. 음의 파형은 음의 높낮이와 길이에 따라 다양하게 형성되며 온도와 습도 그리고 바람의 영향을 받는다. 가장 최적의 조건들이 조합이 될 때 음(音)은 소리(聲)를 넘어 악(樂)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대부분 음악을 수양의 도구로 사용하기보다 상황자체를 즐기기 위해서나 피곤한 심신을 달래기 위해 듣기 때문에 오불탄을 현대 생활에 적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없지 않다. 현대는 계급사회도 아니고 너무 격식을 따지기에는 대중과 멀어질 우려도 있다.

살짝 뒤집어 생각해서 봄바람이 불거나 날씨가 청명할 때, 대중들과 만났을 때, 의관을 갖추지 못했지만 내 음악을 기꺼이 즐길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이 있을 때,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에 있을 때 우리 전통음악을 연주하는 건 어떨까.



국악원은 전통을 계승하고 미래의 전통을 만들어가야 하는 소명을 띠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2009년 처음 추진돼 4년여 만에 결실을 맺는 연희풍류극장 개관을 앞두고 있다. 서울 우면산 바로 아래 자리 잡게 될 연희풍류극장에는 야외공연장 연희마당(1,300석 규모)과 좌식 실내 소극장 형태의 풍류사랑방(130석 규모)이 들어선다.

야외에서는 일제강점기와 급속한 현대화를 거치며 대중과의 소통기회를 점점 잃어가고 있는 전통연희가 일반인들과 자주 만날 수 있는 축제의 장이 펼쳐져 고된 세상살이에 막힌 울분과 한을 풀어주는 난장과 같은 해방구를 만들어준다. 함께 떠들고 웃고 즐기는 동안 세상이 정한 틀에서 한 발짝 물러나 현대인의 빠른 호흡과 함께 한다.

전통음악으로 몸과 마음 치유하기를

또 풍류사랑방에서는 옛 전통사회에서 민간 상류층 또는 중인층의 전문적인 악사들이 함께 어울려 취미활동으로 연주했던 줄풍류ㆍ대풍류ㆍ가곡 등의 음악이 연주된다. 아름다움을 사색하고 잡념을 떨쳐내고 몸과 마음을 바로 세우고 수양하기 위해 선비가 정결한 자세로 연주하고 감상했던 음악으로 영혼을 더욱 깨끗이 할 수 있는 공연장이 탄생하는 것이다.

저잣거리도 아니고 비록 공연장이라는 형식을 띠고 있지만 원형의 야외 연희마당에서 우리 연희와 어우러져 세상의 근심과 스트레스를 날려 보내며 공연에 흠뻑 취해도 보고 차분히 앉아 차를 음미하며 그 시대 선비가 누렸을 작은 사치와 만나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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