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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206> 좌석이 대체 뭐길래


얼마 전 온라인 공간을 뜨겁게 달군 폭행사건이 하나 있었다. 이 소식을 접한 많은 네티즌들이 분노를 표했다. 피해자가 임산부였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피해자의 남편이 온라인에 ‘목격자를 찾는다’는 글을 올리며 알려졌다. 초기 임산부인 아내가 노약자석에 앉자 옆자리에 앉아 있던 노인이 ‘감히 어딜 앉느냐’며 다짜고짜 폭력을 휘둘렀다는 것이다. 임산부라는 사실을 밝혔음에도 가해 노인은 사과는커녕 복부를 때리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만삭이 아니었기 때문에 임산부라고 짐작하지 못했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노약자석은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에게 마련된 일종의 ‘배려석’이지만 일반인이 노약자석에 앉는다고 해서 벌금을 내거나 법적 처벌을 받거나 하지는 않는다. 하물며 배려석에 앉았다고 폭행이라니 가당치도 않다.

지하철 객실 가운데 좌석 양 끝에는 분홍색 스티커가 붙은 임산부 배려석이 있다. 이렇게 눈에 띄도록 디자인을 개선한 것은 승객들이 임산부를 더 잘 배려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실효성 없는 정책이라며 연일 보도되는 바로 그 자리 이야기다. 얼마 전 SBS는 만삭의 임산부를 보고도 자리를 비켜주지 않은 승객의 모습을 방송에 내보내며 배려 없는 현실을 꼬집었다. 시청자들 역시 ‘인간적으로 너무하다’며 혀를 찼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다. 배려가 이뤄지도록 자리까지 따리 마련한 것이지만 법적인 의무는 아니니까.

대체 ‘자리’가 뭐라고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좌석 때문에 싸우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목격하곤 한다. 내가 직접 본 것만 해도 가방을 두고 지하철 노선표를 확인하던 학생과 ‘일어나면 자리를 포기한 것’이라며 실랑이를 벌이던 중년 여성부터 빗물을 뚝뚝 떨어뜨리던 우산 때문에 의자가 젖었다고 싸우던 사람들까지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다. 앉아서 가는 게 편하니 자리 쟁탈전이 벌어지는 건 당연하다. 특히 출퇴근길 지옥철을 매번 경험하는 직장인이라면 생판 남과 부대낄 일 없는 편안한 자리의 소중함은 남다르다. 자도 자도 부족한 잠을 보충할 수도 있으니 이보다 더한 행운은 없는 듯하다. 하루 종일 아르바이트, 취업 공부로 심신이 피폐해진 청춘도 예외는 아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노약자석의 치열한 경쟁률에 밀린 백발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자리를 찾아 일반석 앞을 헤맨다 한들 좀처럼 본인의 자리를 양보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다. 눈을 감거나 스마트폰만 만질 뿐이다. ‘나도 피곤하니까’ ‘너무 피곤하니까’ 아예 신경 쓰지 않거나 신경 쓰이더라도 모른 척 하는 것이다. 다소 거창한 감이 있지만 그런 면에서 ‘자리’는 지치고 힘든 일상 속에서 포기하고 싶지 않은 ‘행운’이다. 그러기에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양보한다면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배려 그 자체다.



법으로 정하지 않았어도 약자를 위해 약간의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는 배려는 팍팍한 세상에 꼭 필요하다. 지하철에서 목발을 짚은 승객이 비틀거리는 걸 본적이 있는가. 앞자리에 두 다리가 멀쩡하고 충분히 서 있을 수 있는 사람이 양보하지 않고 앉아 있다면 본인이나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이나 거북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배려하라’며 타인에게 배려를 강요해선 곤란하다. 배려심이 없다고 속으로 손가락질하거나 눈살을 찌푸릴지언정 마음 속으로 삭여야 한다. 목발을 짚은 승객이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고 욕하거나 때리는 일이 정당화될 수는 없지 않은가. 그건 배려를 핑계 삼은 폭력일 뿐이다. 배려는 자발적이어야 아름답다. 그런 배려가 곳곳에서 이뤄지는 ‘여유 있는 사회’의 모습을 기대하는 건 지나친 욕심인 것인가, 곱씹을수록 씁쓸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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