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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인사이드] "공식적으로 사과할때까지 수요 집회 끝내지 않을 것"
입력2011-11-13 17:37:35
수정
2011.11.13 17:37:35
강일출 할머니 인터뷰
늦가을 햇살이 따사로운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의 나눔의 집에서 강일출(83) 할머니를 만났다.
강 할머니는 낯선 기자를 보고도"여기로 와 앉아"라며 손짓했다. 손주 뻘인 기자가 반가웠던 모양이다. 할머니의 정겨운 손짓에 7년 전, 모교 어학당에서 우리말을 배우는 일본인 학생들과 이곳을 방문했던 기억도 새삼스레 어제처럼 생생하게 다가왔다.
푸른색 주름 옷에 스카프까지 두른 강 할머니는 이날 정오에 열리는 수요집회에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할머니들이 쇠약해지지는 않았을까 걱정이었는데, 다행이었다.
그래도 시간을 속일 수는 없었다. 당뇨와 혈압이 할머니의 기력을 빼앗고 있었다. 거칠게 마른 손은 연신 양 옆으로 흔들렸고 눈빛도 많이 탁했다.
강 할머니는 수요집회에 대해 묻자"우리야 곧 죽으면 그만이야. 사죄든 배상이든 그런 거 필요 없어. 그런데 다음에 살아갈 젊은이들은 어떡하나?"라고 되물었다. "우리나라가 일본한테 제대로 사과 받지 못한다면 그건 안 되지."똑 부러지는 대답도 함께 돌아왔다.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사과할 때까지 할머니는 수요집회를 끝내지 않을 다짐이었다.
강 할머니는 경북 상주출신이다. 가난한 집에 형제도 많았다. 집 뒤뜰에 감나무가 있어서 가족들과 감을 따다 말려 배고픔을 이겨냈다고 했다. 형제들이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바람에 조카들과 함께 학교를 다녔다. 학교 갈 때 조카들과 개울가에서 장난치던 기억을 떠올리며 할머니는 옛 일을 하나씩 끄집어냈다.
하지만"살아남은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고향으로 못 가. 부모도 죽었고, 그때 같이 지냈던 조카들도 다 죽었고…"고향을 등지고 살아야 했던 삶에 대한 원망은 아직 남아있는 듯, 눈물이 어렸다.
일제 강점기 말기인 1943년 어느 가을날, 강 할머니는 집에 찾아온 순사들에게 끌려갔다. 부모가 모두 일하러 바깥에 나가있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고 끌려왔던 어린 소녀는 1944년 중국 목단강 위안소에서 상상도 못했을 고통과 마주해야 했다.
해방 이후에 곧바로 돌아오지 못하고 중국에 정착해 살았던 강 할머니는 지난 2000년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를 찾는 신문 광고를 접하고서야 귀국을 결심했다. 그 때 일을 두고 할머니는 "내가 그래도 간호사로 일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았으니 바로 대사관에 연락을 했지. 고향에 돌아가고 싶었으니까."라고 뿌듯해했다. 그 후 할머니는 이곳, 나눔의 집을 제2의 고향 삼아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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