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의 내로라 하는 유명 펀드들도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의 충격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이들 '빅네임(big name)' 운용사들이 굴리는 신흥시장 펀드들은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테이퍼링과 중국 경기둔화 등으로 신흥국 불안이 커지면서 올 들어 10%에 달하는 손실을 냈다.
6일(현지시간) 로이터에 따르면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 남미펀드는 연초 이후 수익률이 -10%를 기록했다. 피델리티 남미펀드와 T 로프라이스 남미펀드, 드레이퓨스의 브라질 주식펀드도 각각 11% 이상 빠졌다. 애스펙스캐피털의 대표펀드도 1월에만 5.64% 손실을 기록하며 지난해 연간 손실 4.4%를 이미 웃돌았다.
또 유럽의 최대 펀드 가운데 하나인 윈턴과 세계 최대 신흥시장 펀드인 브레번하워드도 1월 한달에만 각각 2%, 1.6%의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신흥국 주가와 통화가치가 동시에 떨어지며 피해를 이중으로 입은 탓이다. 실제 거래량 기준으로 월가 2위 상장지수펀드(ETF)인 아이셰어 MSCI 이머징마켓 펀드는 올 들어 지난달 29일 현재 9.7%의 손실을 냈다.
실망스러운 실적에 투자가들도 속속 자금을 빼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에 따르면 전세계 투자자들이 신흥시장 주식형펀드에서 지난달 29일까지 한주간 빼낸 돈은 64억달러에 달한다. 주간 기준으로 지난 2011년 8월 이후 최대 규모다. 반면 프런티어 투자펀드는 규모는 적지만 상대적으로 선방하고 있다. 애시모어와 HSBC의 경우 올 들어 각각 2.5%, 1.3%의 수익률을 거뒀다.
사정이 이런데도 블랙록 등 월가의 큰손들은 여전히 "지금은 장기투자가가 신흥국 자산을 저가 매수할 기회"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T 로프라이스의 조세 코스타 벅 부회장은 "최소 3년을 내다보고 손실률이 15%를 나타내더라도 브라질 주식을 보유할 것"이라고 말했다. 핌코의 스코트 마더 글로벌포트폴리오 수석도 "무차별적으로 신흥국 채권은 던지고 선진국 자산을 사려는 패닉 현상이 끝나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다수 월가 헤지펀드들은 신흥시장에 대한 불안감으로 서둘러 외환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하고 있다. 미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따르면 지난달 28일까지 일주일간 주요국 보유통화 변동건수는 10만2,115건으로 지난해 9월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주로 영국·일본·유로를 사들인 반면 멕시코 등 신흥국이나 호주통화 포지션은 매각했다. 씨티그룹의 리처드 코치노스 주요10개국(G10) 외환전략수석은 "장기 투자가들은 지난해 이미 연준 테이퍼링에 덜 민감한 통화로 갈아탔다"며 "지난주 신흥국 통화를 매각한 세력의 80%는 헤지펀드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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