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새 길을 낸다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가야 할 곳이 너무 많은데 나이 먹는다는 게 억울할 뿐이다.” 생전 인터뷰에서 이런 말들을 남겼던 산(山) 사나이 박영석 원정대장이 이제 산 속의 전설로 잠들게 됐다. 박 대장의 영결식이 3일 오전10시 서울 혜화동 서울대병원에서 산악인장으로 거행된다. 분향소가 마련된 이틀째인 2일에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서 실종된 박 대장과 강기석, 신동민 대원을 추모하려는 조문 행렬이 오전부터 이어졌다. 이날 오후에는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박용성 대한체육회 회장 등 관계 인사들이 찾아 이들의 명복을 빌고 가족들을 위로했다. 최 장관은 원정대의 강기석, 신동민 대원의 가족에게 각각 체육훈장 거상장과 백마장을 전달한다. 대한산악연맹은 두 대원은 지금까지 꾸준한 고봉 등반으로 이미 해당 수준의 공훈 점수를 획득한 상태였으나 안타까운 사고 탓에 추서 형식으로 훈장을 받게 됐다고 밝혔다. 박영석 대장은 히말라야 14좌 완등의 업적으로 앞서 2003년에 체육 분야 최고의 훈장인 청룡장을 받았다. 산악인을 중심으로 한 각계 인사들은 끊임없는 도전과 개척정신, 패기로 대변되는 박 대장의 삶을 떠올리며 애도했다. 박 대장은 이번에도 안나푸르나 남벽의 새로운 ‘코리안 루트’ 개척을 위해 떠났다가 지난달 18일 눈사태로 어려움에 빠졌다는 교신을 끝으로 연락이 끊겼다. 소탈한 성품의 박 대장은 국민과 함께한 산악인으로 기억된다. 특히 ‘산악 그랜드슬램’의 첫 단추를 끼웠던 2001년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은 국민들에게 큰 희망을 안겨줬다. 세계 2위봉인 K2(8,611m) 정상 등정으로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8,000m급 봉우리 14개를 모두 올랐다는 낭보는 외환위기의 여파로 경기 침체 속에 고통 받던 국민들에게 불가능은 없다는 용기를 심어줬다. 당시 서울경제신문이 주최하고 삼성카드ㆍLG화재(현 LIG손해보험) 후원으로 나섰던 K2 등정은 극적이었다. 7,500m에 캠프3을 설치할 때까지는 순조롭게 전진하다가 악천후를 만나 베이스캠프로 후퇴하는 시련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대원 한 명이 고소병으로 하반신이 마비돼 후송되기도 했다. 보름 이상 날씨가 좋아지기를 기다리던 원정대는 화창한 날씨가 일주일 정도 밖에 지속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베이스캠프를 출발한 지 약 사흘 만인 2001년 7월 22일(현지시간) 속전속결의 알파인 스타일 등반을 강행, 마침내 정상에 올랐다. 이로써 세계 최단기간인 8년 2개월만에 히말라야 14좌 등정을 마무리한 그는 이후 빛나는 성공 일기를 써 내려간 끝에 2005년 북극점 도달로 8,000m급 14좌ㆍ7대륙 최고봉ㆍ세계 3극점을 모두 등반하는 그랜드슬램을 이뤘다. 그는 또 ‘박영석 대장과 함께하는 희망찾기 등반 대회’를 통해 어린이를 비롯한 시민들에게 도전정신과 희망을 전하는 일도 멈추지 않았다. 동국대학교는 체육교육과 출신으로 이 학교 산악부를 통해 산악인의 길로 들어선 박 대장의 도전 정신을 기리기 위해 동상을 세울 방침이다. 김희옥 동국대 총장은 1일 “박영석 대장의 동상을 세우고 그 주변을 교육의 장으로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