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뒤 요아힘 뢰브(54) 독일 감독은 마음 놓고 웃지도 못했다. 진 쪽의 분노야 말할 필요도 없고 이긴 쪽도 미안한 수습 불가의 분위기. 9일(이하 한국시간) 브라질 월드컵 4강이 끝나고 난 벨루오리존치 미네이랑 주경기장이 그랬다. 독일과 브라질의 경기에서 '베이스볼 스코어'가 나오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굴욕의 대상이 월드컵 최다 우승국(5회)이자 이번 대회 개최국 브라질이라는 점이 세계를 당혹하게 했다. 브라질은 전반에만 0대5로 끌려간 끝에 1대7로 졌다. 94년 만에 나온 브라질의 A매치 사상 최다 골 차 패배 타이기록. 공수의 핵인 네이마르(바르셀로나)와 치아구 시우바(파리 생제르맹)가 각각 부상과 경고 누적으로 못 나왔다 하더라도 그것이 변명이 될 수는 없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결승에서 독일을 2대0으로 꺾었던 브라질은 그때의 브라질이 아니었다.
독일은 그때도 강했지만 오늘의 독일은 강함을 넘어 특별했다. 그 특별함은 바로 뢰브 감독의 머리에서 나왔다. 위르겐 클린스만(현 미국 감독)의 뒤를 이어 2006년 7월부터 9년째 독일 대표팀 사령탑을 지키고 있는 뢰브는 '독일판 티키타카' 전술로 24년 만의 우승에 한 계단만을 남겼다.
티키타카는 탁구공이 왔다 갔다 한다는 뜻의 스페인어. 짧은 패스게임 위주의 전술을 말한다. 바르셀로나가 이 전술로 2009년 6관왕과 2011년 5관왕에 올랐고 스페인도 같은 색깔로 2010년 남아공 월드컵과 유로2012에서 우승했다. 그랬던 스페인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면서 티키타카도 종말을 맞은 것처럼 보였지만 뢰브의 독일이 명맥을 잇고 있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때 수석코치로 3위, 남아공 대회에서 감독으로 3위를 경험한 뢰브가 우승을 위해 꺼내 든 카드는 독일식 티키타카였다. 독일 분데스리가 도르트문트 구단의 생존전략인 '게겐 프레싱(전방 압박·빠른 전방위 압박으로 뺏긴 공을 되찾는 수비 전술)'에 바르셀로나식 티키타카를 접목, 12년 만에 결승에 선착했다. 통산 8번째 결승 진출인 독일은 브라질(7회)을 제치고 역대 최다 결승 진출국으로 우뚝 섰다. 결승은 14일 오전5시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 경기장에서 열린다.
뢰브식 티키타카에 대한 비난도 있었다. 조별리그 첫 경기 포르투갈전 4대0 승리 이후 8강까지는 이겨도 겨우 1골 차로 이겼다. 전차군단다운 시원한 축구를 바라는 자국 팬들과 언론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하지만 뢰브는 철저히 이기는 축구에만 전념했다. 세계 최고의 측면 수비수 필리프 람(바이에른 뮌헨)을 미드필더로 기용하고 공격형 미드필더 메주트 외칠(아스널)을 윙어로 쓰는 용병술에 대한 논란에도 이기기 위한 최선이라는 확신으로 밀어붙였다. 외칠은 이날 결정적 도움을 올리며 부진 탈출을 알렸다. 독일은 준결승에 출전한 14명 가운데 6명이 페프 과르디올라가 감독으로 있는 바이에른 뮌헨 소속. 과르디올라는 바르셀로나 감독 시절 티키타카로 세계를 정복했던 사령탑이다. 뮌헨 소속 선수들이 대표팀 주축이다 보니 전술 이해도 빨랐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프랑스가 브라질을 꺾고 우승할 당시 주역이었던 파트리크 비에라는 "독일은 조직력이 좋은 팀이 개인 기량이 뛰어난 팀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줬다"고 평했다.
한편 12년 전 브라질의 우승을 이끈 뒤 '우승청부사'로 돌아왔지만 독일에 가로막힌 루이스 펠리피 스콜라리(66)는 명장에서 하루아침에 '역적'이 된 모양새다. 파괴력이 부족한 공격수 프레드(1골·플루미넨세)를 끝까지 믿어 여론의 십자포화를 받고 있는 그는 "모든 책임은 내게 있다. 라인업과 전술을 짜는 사람은 나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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