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동참한 대대적인 통화완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각국의 물가상승률은 꿈쩍하지도 않으면서 자산버블만 비정상적으로 팽창하는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주요국 소비자물가(CPI) 상승률이 2년반 만에 최저 수준에 머물고 있어 자칫하면 자산버블이 붕괴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비관론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6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원유와 철광석 등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물가상승률이 둔화하는 '디스인플레이션'이 전세계로 확산되면서 각국의 자산버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디스인플레이션은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디플레이션 상태는 아니지만 경기둔화 등으로 '물가가 오르기 어려운 상태'에 빠진 것을 의미한다고 신문은 설명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나 일본은행의 대규모 양적완화와 유럽중앙은행(ECB)을 비롯한 각국의 금리인하에도 불구하고 신흥국을 포함한 주요30개국의 1ㆍ4분기 CPI 상승률은 2.4%로 2년6개월 만에 최저 수준에 머물러 있다. JP모건체이스는 4ㆍ4분기에 1.9%까지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미국의 경우 최근 발표된 4월 CPI가 전월 대비 0.4% 하락해 2008년 12월 이래 최대 낙폭을 기록했으며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해 시중에 돈을 쏟아붓고 있는 일본도 여전히 물가는 마이너스 수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 CPI는 3월 전년 동월비 0.5% 하락했으며 오는 31일 발표되는 4월 수치 역시 0.4%의 하락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이 시중에 돈을 푸는데도 물가를 자극하지 못하는 것은 중국ㆍ인도 등 신흥국의 경기회복세가 둔화하면서 원유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고 있는데다 선진국에서도 경기부진으로 임금이 좀처럼 오르지 못해 물가를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아베 신조 정부가 재계에 임금인상 압력을 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올봄 노사 임금협상 결과 임금상승률은 1.65%로 지난해(1.69%)보다 오히려 낮은 것으로 집계됐다. 원자재 가격 역시 원유 가격이 1년 전보다 10% 하락했으며 구리 가격은 지난해 고점 대비 20%가량 떨어진 상태다.
문제는 정체된 물가가 비정상적인 자산거품을 키울 수 있다는 데 있다. 각국 중앙은행이 2%의 물가상승률을 목표로 제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CPI가 오르지 않으면 중앙은행의 돈 풀기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풀린 돈이 실물경제로 흐르지 않고 자산시장으로만 유입되는 상황에서 이는 언제 터질지 모를 거품만 키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23일 일본 도쿄증시의 닛케이지수가 7.3% 폭락한 것을 계기로 투자자들 사이에서 금융시장 왜곡에 대한 인식과 함께 증시 폭락을 예상하는 비관론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와 CNN머니 등 외신들은 지적했다.
마크 스피츠나젤 유니버사 투자책임자는 "시장이 비정상적이고 왜곡돼 있다고 투자자들이 깨닫기 시작했다"며 "닛케이지수 폭락과 같은 혼돈이 되풀이되면서 앞으로 6개월에서 길어야 1년 사이에 글로벌 증시가 20% 이상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신흥국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기노시타 도모 노무라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달 들어 필리핀 증시가 최고치를 경신하고 태국 증시도 전년 동기 대비 40%가량 오르는 등 글로벌 완화 여파로 일부 신흥국 증시가 급등하고 있다며 "거품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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