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수출품목 1위가 석유제품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듯 하다.
1990년대 10대 수출품목에 들었던 석유제품은 2000년대 이후엔 5위권에 안착했다. 지난해 3월 일본 대지진으로 국내 정유사로 주문이 몰린 데 힘입어 올 3사분기 누적수출량은 1위다. 세계 수준의 기술경쟁력을 갖춘 우리 정유사들이 일본 대신 기회를 잡은 것이다.
원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정유기술로 석유제품을 1등 수출품을 만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80년대 정부의 중장기 중화학공업 육성정책, 기업의 공격적 투자, 기술경쟁력 축적을 위한 연구개발이 쌓여 빛을 보게 됐다.
잇따른 글로벌 경기침체로 정부의 기간산업 육성책을 골자로 한 수출주도형 경제는 이제 내수 진작에 힘이 부친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수출ㆍ내수의 균형을 유지해 외부변수로 인한 위기를 내수경기 활력으로 버틸 수 있는 포트폴리오를 갖춰야 한다는 주장과 구호는 분분하지만 체감할 수 있는 정책적 효과는 찾기 어렵다.
내수경기 진작을 건설산업 부양과 동일시 하던 시대도 지났다. 저출산ㆍ고령화로 인한 저성장 시대에 공급과잉인 부동산 정책을 빠른 내수경기 부양의 수단으로 쓰기엔 부작용이 더 큰 단계에 이르렀다.
내수경기 활성화의 열쇠는 중소기업 살리기에 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정부도 산업생태계의 허리인 중소기업 진흥을 위해 끊임없이 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혁신적인 내용은 드물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젠 중소기업 정책도 이분화가 필요하다. 자립 가능한 중소ㆍ중견기업은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길만 터 주고, 대신 난립해 있는 자영업 수준의 영세 중소기업이 전문성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주력해야 한다.
대기업 납품으로 안정적 매출을 올리는 중소기업, 수출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 마저 지원해야 한다는 중압감을 아직도 정부가 떠안고 있다면 대기업의 양적 팽창에 주력했던 산업시대적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선진국 뒤를 따라가던 과거와는 다른 발상의 전환 없이는 혁신적인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정책은 나오기 어렵다. 실리콘밸리의 벤처생태계를 부러워만 할 게 아니라 이 땅에서 씨를 뿌린 소기업이 꽃을 피우도록 미래지향적인 정책을 펼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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