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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클릭] 逆(역) 속도 경쟁


범선과 기선(汽船). 어느 배가 빠를까. 당연히 후자다. 그런데 질문을 19세기로 한정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범선이 훨씬 빨랐다. 쾌속범선인 클리퍼선(clipper)은 시속 10노트에 턱걸이하던 초기증기선을 비웃듯이 내달렸다. 오스트레일리아 항로에서 바람과 해류를 제대로 탄 클리퍼선 한 척이 순간 시속 22노트(40.7㎞)를 냈다는 기록도 있다.

△범선의 대형화와 고속화에 기름을 부은 것은 무역. 중국산 차나 오스트레일리아산 양모를 빨리 가져오는 선박에 수입상들이 후한 상금을 내린 통에 19세기 중후반 범선 속도경쟁이 불을 뿜었다. 증기선보다 속도가 빠르고 석탄을 적재할 필요가 없어 같은 크기라면 화물적재 능력도 훨씬 컸던 쾌속범선의 최종진화형은 1902년 건조된 프로이센호. 길이 132미터의 덩치를 대형돛 48장에 담은 바람의 힘으로 17노트의 속도로 움직였다. 프로이센호는 8,000톤의 화물적재 능력을 자랑하는 괴물이었으나 범선의 진화는 여기서 멈췄다. 날로 발전한 증기선에 밀려서다.

△더 빠르고 큰 배에 대한 열망은 과거형이 아니다. 최근의 대형화ㆍ고속화는 정신을 못차릴 정도다. 1956년 군수송함을 개조한 '아이디얼X'호가 컨테이너 58개를 최초로 운반한 이래 1980년대까지 2000TEU급, 1990년대 4000TEU급을 거쳐 1만TEU급이 건조된 2006년만 해도 한계에 도달해 더 이상 큰 배는 나올 수 없다고 여겼지만 7월 1만8,000TEU급이 등장한다. 심지어 2만2000TEU급도 설계 중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시속 10노트 중반에 머물던 속도 역시 30노트까지 넘본다.



△현대상선이 8600TEU급 컨테이너선 '현대 브레이브호'를 개조했다는 소식이다. 목적은 속도 조정. 연료비 절감을 위해 최고속도를 시속 27노트에서 18노트로 다운시켰다. 역 속도경쟁인 셈이지만 속도경쟁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효율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유한한 자원과 환경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간은 효율 제고와 지속 발전을 위해 더 많은 느림을 선택해야 할지도 모른다. 단지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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