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나무와 매화 나뭇가지 위에 까치 한 쌍이 살포시 올라 앉은 그림을 '죽매쌍희(竹梅雙喜)'라 한다. 대나무와 매화는 부부를 뜻하는데, 부부가 사이 좋게 살아가면서 함께 기쁨을 누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전통 민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업을 선보여온 서공임 작가는 '죽매쌍회'라는 이름 대신 '결혼 축하드려요, 행복하시길 바랍니다'라는 제목을 달았다. 한자보다는 한글과 영어를 편하게 받아들이는 현대인들이 민화를 일상 속에서 접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서공임 작가 초대전 '민화에 홀리다'가 오는 23일까지 소공동 롯데갤러리 본점에서 열린다. 국내에서 3년 만에 열리는 이번 개인전에는 작품 50여 점이 소개된다. 그 동안 민화는 낙관도 없는 '시골 장터의 환쟁이 그림'으로 폄하되곤 했지만, 사실 민화의 소박함 속에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가 오롯이 담겨 있다. 우리나라에 민화가 등장한 것은 약 200년 전으로, 양반 사대부의 예술이 절대적인 미(美)의 기준이 되던 시기였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도 사대부 문인들의 고상한 예술세계는 굳건히 이어졌고 성리학에 뿌리를 둔 문인화와 산수화는 우리나라 문화를 대변했다. 하지만 여염집 대청마루나 안방에서는 고상한 산수화 대신 부귀영화와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민화를 붙이곤 했다. 다산, 다복, 금슬, 승진, 장수 등을 의미하는 상징들이 은유와 직유의 세계를 넘나들며 화면을 가득 채우고, 그런 기원들은 서민들의 생로병사를 옆에서 지켜왔던 것이다. 민화의 특별한 존재 의미에 주목한 서 작가는 "'상징의 문법의 그림'인 민화에 담긴 '수복강녕(壽福康寧)'의 염원을 현대적으로 풀어내고자 했다. 전통 민화의 상징성을 훼손하지 않고 형태를 유지하면서 요즘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런 노력의 결실일까. 작가의 작품은 그림에 담긴 이야기들이 제목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전도양양한 나의 인생이 보인다'는 '행림춘연(杏林春燕)'을 풀어낸 것이다. 살구꽃에 제비가 날아드는 그림으로, 과거에 급제해 축복된 인생이 되기를 기원하고 있다. '아버지, 어머니,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라는 작품은 '수거모질'을 풀어낸 제목이다. 돌 옆에 국화, 호랑나비, 고양이를 배치한 그림인데, 돌은 그 무게만큼이나 장수를 의미한다. 여든 살이 되어서도 들처럼 단단하게 사시라는 헌사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폴란드, 중국, 프랑스 등 국내외를 오가며 활발히 한국의 현대 민화를 선보였다. 특히 한복에서부터 양복, 이브닝드레스 등 유명 디자이너들의 패션쇼에도 여러 차례 그의 그림이 멋진 의상으로 선보였다. 이번 전시는 제목부터 작품까지 현대에 맞게 제작, 기획된 민화 42점이 갤러리에 걸리고, 에비뉴엘에는 대형 모란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민화, 600X120㎝)를 비롯 섬세하게 재현된 전통 민화 12점이 선보인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