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제역으로 살처분된 가축 수가 140만마리를 넘어섰다. 정부 당국이 감염차단을 위해 백신 처방에 나섰지만 좀처럼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구제역 사태에 따른 경제적 피해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여기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조류 인플루엔자(AI)까지 확산되면서 농민들의 가슴은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구제역 바이러스에 감염된 가축을 살처분하지 않고 치료를 통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치료제 개발은 가능하지만 구제역 바이러스의 감염 확산 속도가 워낙 빠른데다 비용 등을 고려할 때 경제성이 없어 현재 연구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세계동물보건기구(OIE)는 구제역 발생 상황에 따라 ▦구제역이 발병하는 곳 ▦백신 접종으로 구제역이 발생하지 않는 곳 ▦백신 접종 없이 구제역이 발생하지 않는 곳(청정국)으로 분류한다. 우리나라는 구제역과 AI에 감염된 가축은 무조건 살처분ㆍ도살한다. 구제역에 감염된 가축은 계속 바이러스를 배출하기 때문에 신속히 제거하는 것이 확산을 막는 최선의 방법이기도 하지만 청정국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세계 육류시장에서 청정국에서 수출한 육류가 우위를 점하기 때문이다. 강신영 충북대 수의학과 교수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구제역이 발생해도 살처분을 하지 않는다. 구제역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거나 구제역 바이러스가 든 축산물을 섭취하는 것을 용인한다는 의미"라며 "우리나라 국민 정서로는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살처분이 구제역 확산을 막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구제역 확산을 막기 위해 살처분이나 백신 접종이 이뤄지고 있지만 치료제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AI나 돼지 인플루엔자(SI)에 대한 치료제 개발이 비교적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는 AI나 SI가 사람에게도 전염되는 반면 구제역은 가축에게만 발병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또 구제역 바이러스는 변이가 일어나기 쉽고 전파속도가 워낙 빨라 치료가 쉽지 않다는 현실적 문제도 있다. 강 교수는 "소ㆍ돼지와 같이 집단적으로 사육하는 산업적 동물은 치료하면 경제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면서 "치료하는 데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효용성도 낮아진다"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세계 각국은 구제역 치료 연구를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구제역 바이러스의 증식을 억제하는 연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한의학연구원은 지난해 국내 자생 한약재를 원료로 하는 신종플루 치료용 한약제제(KIOM-C)를 개발했다. 연구원은 이 한약제제를 돼지 바이러스에 걸린 왜소돈에게 투여해 두 차례에 걸쳐 반복 실험한 결과 모두 정상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바이러스성 질병인 구제역에도 효과가 있을 가능성을 내포한다. 연구를 수행한 마진열 박사는 "말 그대로 가능성일 뿐 구제역에 효과가 있는지는 검증되지 않았다"면서 "우리나라가 구제역 청정구역이어서 관련 실험을 하기도 어렵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구제역 치료제 개발은 경제성과 효용성 측면에서 의미가 없다고 보고 있다. 구제역 바이러스는 유형이 매우 다양하고 각 유형 안에서도 유전적 변이도 커 효과적인 백신 개발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제역이 일상화되고 이로 인한 경제ㆍ환경ㆍ윤리적 문제가 계속 발생할 경우 살처분이 아닌 다른 대책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마 박사는 "구제역 바이러스를 제거하는 치료제를 개발할 수는 있지만 정부의 축산정책 등을 고려할 때 현실에서 이를 실제 사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면서 "하지만 무조건 살처분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는 만큼 구제역을 비롯한 여러 바이러스성 질환에 대한 신약 개발연구를 지속적으로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