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리 장관은 이날 MS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지구상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잔인한 곳 가운데 하나"라며 "그곳에서는 우리 모두가 아주 걱정해야 하는 사악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부패와 인권 침해의 정도는 말할 필요도 없다"며 "그들은 사람들을 처형하고 122㎜ 대공화기를 이용해 사람들을 제거하면서 주민들에게 이런 걸 보도록 강요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북한은 악이고 사악한 곳"이라며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전세계가 적용할 수 있는 모든 법 규정을 적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케리 장관의 이번 대북 비판은 지난 2002년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이 이란·이라크와 함께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한 후 미 최고위급 인사 가운데 12년 만에 가장 강도가 높은 발언이다. 북한의 비인도주의적 행위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미국과 국제사회의 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국제사회의 공동대응을 촉구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동안 케리 장관이 민감한 현안에 대해 감정적인 표현을 사용, 외교적인 혼선을 빚은 사례가 종종 있었다는 점에서 그의 이번 발언에 큰 무게를 둘 필요가 없다는 기류도 있다.
케리 장관은 또 북핵 문제에 대해 "이달 중순 베이징을 방문해 미국의 선택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를 했다"면서 "지속적으로 북한을 압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미 유력 일간지인 뉴욕타임스(NYT)도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국제형사재판소(ICC) 심판대에 세우라고 촉구했다. NYT는 '북한의 잔혹성'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북한의 반(反) 인도적 범죄와 관련해 김 위원장 등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를 반드시 법의 심판대에 세워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 신문은 북한의 반 인도적 범죄에 대해 탈북자·인권단체 등을 통해 숱하게 들어왔지만 최근 발표된 유엔 북한 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만큼 북한 인권 문제를 잘 다룬 보고서도 없다고 평가했다.
NYT는 이 보고서가 다음달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유엔인권이사회(UNHRC)에 공식 제출되면 유엔은 반드시 추인하고 상임이사국에 북한의 반인권 범죄를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하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신문은 국제형사재판소 회부가 성사되고 김 위원장의 신병이 확보되면 재판을 통해 김 위원장을 처벌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케리 장관의 이번 발언이 최근 이산가족 상봉 행사 개최 등으로 해빙기를 맞고 있는 남북관계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조만간 이산가족 상봉 행사 재개를 위한 실무접촉을 북한에 제의할 방침이며 청와대를 비롯한 대북라인 관계자들은 남북관계 개선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해 애쓰고 있다. 다만 케리 장관이 이달 우리나라와 중국을 방문해 북한의 변화를 강하게 촉구했던 점을 감안하면 단순히 지금까지 내놓은 대북 압박 메시지의 연장선상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 당국자는 "케리 장관의 이번 발언은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의 조사보고 발표와 관련이 깊어 보인다"며 "미국의 정확한 의도를 알려면 향후 움직임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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