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부=서정명기자
“천막이라도 치라고 얘기했다. 천막치고 그곳으로 들어간다”
지난 2004년 3월 23일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새로운 대표로 뽑힌 박근혜 대표의 목소리에는 비장함과 결기가 짙게 배어 있었다. 당시 한나라당은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무리하게 추진하다 만신창이가 됐다. 여기에 ‘차떼기 당’ ‘부패 정당’이라는 꼬리표를 달며 국민들의 원성을 샀다.
당시 박 대표는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았다. 헐값에 당사를 처분하고 서울 여의도공원 맞은편에 허름한 천막당사를 쳤다. 84일간 천막당사에서 등을 돌린 국민들에게 읍소했다.
그리고 전국 방방곳곳을 돌며 국민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국민이 우리의 진심을 받아줄지는 미지수이지만 진정으로 과거를 반성하고 새로 출발하는 우리의 마음을 받아주길 바랄 뿐입니다”. 국민들과 악수한 손은 멍이 들고 쓰리고 근육마저 손상됐지만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났다. ‘붕대투혼’이었다. 부패 정당 오명을 씻기 위해 기소된 당원은 자격을 정지시켰고 밀실공천은 뿌리를 뽑았다. 이후 한 달도 안돼 4월 15일 치러진 제17대 총선에서 박 대표가 이끈 한나라당은 50석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121석을 얻었다. 박 대표와 한나라당의 눈물, 처절한 반성, 변화와 쇄신을 위한 몸부림이 국민들을 감동시켰기 때문에 가능한 ‘기적’이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또 다른 위기에 처해있다.세월호 침몰 참사로 국민들이 울고 있다. 졸업앨범 사진이었어야 할 아이들의 영정사진을 보며 분노와 울분을 토해내는 소리가 온 나라를 뒤덮고 있다.
박 대통령과 여권은 천막당사, 붕대투혼의 초심(初心)으로 돌아가야 산다. 사즉생(死卽生)이다. 기득권 내려 놓기가 첫 발이다. 총리 등 각료인선부터 야권과 협의할 필요가 있다. 박 대통령은 집권초기,책임총리와 책임장관제를 보장하고 국회와 소통하며 국민대통합에 나서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책임총리와 장관은 온데간데 없고 ‘받아쓰기 각료’ 뿐이다. 야당과의 거리감은 오히려 멀어졌고 국민통합은 요원해 보인다.
박 대통령이 조만간 대국민담화를 내놓는다. 국민들은 천막당사를 짓는 심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붕대투혼의 공감정신으로 혁신과 변화에 나서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내려놓기’가 없는 담화는 아니함만 못하다./vicsj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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