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56부터 다시 본다. 이창호가 백56으로 웅크렸을 때 필자는 그저 '적의 급소는 나의 급소'라는 기훈만을 생각했다. 백이 이 수를 두지 않고 참고도1의 백1로 그냥 뻗으면 흑은 2로 급소를 선점할 것이 너무도 뻔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윤현석9단의 말대로 맹수가 몸을 잔뜩 웅크릴 때는 언제나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강동윤이 기세좋게 흑57로 몰아버렸을 때 이창호는 노타임으로 백58을 두었다. 흔히 코붙임이라고 불리는 통렬한 맥점이었다.
"바로 이게 있었어요."(윤현석9단)
윤현석은 진작부터 이 수를 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당사지인 강동윤은 이 독수를 못 보고 있었던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그저 기호지세로 흑57에 몰았을 겁니다."(윤현석)
"과연 독수로군."(필자)
"이제 이 수의 정체가 눈에 들어왔나요?"(윤현석)
"물론이지."(필자)
필자는 검토실의 바둑판 위에 참고도2의 수순을 척척 놓아보였다. 잠시 후에 실제로 이 수순이 실전에 나타났는데 부분적으로는 조금 달랐다. 강동윤은 자기의 요석 3점이 떨어지기 전에 실전보의 흑63을 활용하고 흑73과 75로 선수이득을 취했다. 비록 흑의 요석 3점이 잡혔지만 그 몸값은 충분히 한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 않으냐고 윤현석에게 물었더니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몸값은 건졌지요. 하지만 역시 당한 겁니다. 백이 한 건을 올렸다고 볼 수 있어요."(윤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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